[2018-2월 초록영화제]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The Gleaners and I, 2000)ㅣ다큐멘터리ㅣ82분ㅣ프랑스ㅣ감독 야네스 바르다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는 쓰레기로 분류되어 '버려지는 것들'과 그것을 '줍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왜 줍는가’에서 시작된 물음은 ‘우리는 왜 버리는가’로 이어져
자본주의의 대량생산과 소비패턴을 생각해보게 합니다.
줍는다는 행위는 버리는 것에 대한 저항이자 또 다른 삶의 방식임을 보여 줍니다.
관객과의 대화
진행자: 이 영화를 선정하게 된 이유는 감독의 생활방식도 좋았고요. 또 저는 시선을 바닥에 두는 걸 좋아하는데 사람들은 항상 화려한 곳이나 위를 보기를 좋아하는데 이 영화는 바닥을 보는 것에 의미를 두는 영화라서 선정했습니다.
바닥은 우리 초록영화제와도 어울리는 장소인 것 같습니다. 극장과 같은 공간보다 이렇게 방바닥에 앉아서 영화를 보는 게 특별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요.
관객분들은 어떻게 보셨나요?
“대량생산품을 위해 너무 많은 것들이 버려지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모든 것들이 이유가 있어서 만들어지는 것일텐데”
관객: 이번 영화는 꼭 나를 닮은 것 같습니다. 저도 길 가다가 나사 못 하나라도 눈에 들어오면 무조건 줍는데요. 그것도 분명히 쓰임이 있어 만들어진 걸텐데 내 손에서 라도 명을 다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주워요. 제가 또 먹거리 관련한 활동도 하고 있기 때문에 감자가 버려지는 장면을 보니 너무 안타깝습니다.
버리는 사람들도 죄책감이 들 것이라 생각해요. 저는 많이 갖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주변에 나눠주는 편이에요.
“전형적인 다큐에서 벗어난 스토리텔링. 어르신이 되어도 늙지않는 창작 욕구를 발휘하는 감독”
관객: 이 영화는 누구를 가르치려는 영화는 아닌 것 같아요. 교훈을 심어주려는 게 아니라 자기가 생각한 걸 툭툭 던지면서 관객이 찾아가게끔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인위적이지만 자연스러운 장면들이 있었는데, 예를 들어 판사가 나오는 장면이 작위적이고 웃기기도 하지만 이 감독만의 유머로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게 인상적이에요.
또 인터뷰의 시작과 끝의 경계가 없는 것 같아요. 쓰레기를 주우러 다니는 사람들을 감독이 가고 싶은데로 쫓아가는, 계획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 신기하고 좋았습니다.
“버려지는 것들, 편의점 폐기물이 생각난다”
관객: 제가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는데, 저녁 6시부터 새벽 1시까지 하는데 9시 반에 물품이 들어오고, 그 시점에 폐기를 하는데, 그때가 물건이 엄청 많더라고요. 폐기물 찍는 법을 검색하다보니 알바생들 사이의 폐기물 처리하는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더라고요. 저희 편의점 뿐만 아니라 정말 버려지는 폐기물품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어떤 방식으로든 필요한 사람들에게 줄 수 없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행자: 그런 폐기물들을 공식적으로 나눌 수 없을까요. 실제로 먹는데 지장은 없는데...
관객: 영화에서도 그렇지만 이 사회는 조직적으로 시스템적으로 음식이 버려지는 것 같다고 생각해요. 요즘 좋은 식당 가면 자기 식당의 음식을 못 싸가게 하는데요. 싸갔을 경우 음식의 퀄리티가 낮아지는 등 음식의 질이 식당의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인 것 같아요. 남는 것은 차라리 버리는 게 기업에겐 더 안전하기 때문이겠죠. 만약 버려진 것을 누군가 먹어서 탈이 나면 피해가 오니깐... 우리는 어떤 소비사회에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관객: 저런 버려진 음식들을 시스템 위로 떠올려서 해결할 수는 없는것 같아요. 폐기물을 남한테 준다는 게... 결국 활동가들이나 비공식적으로 해결되지 않을까 싶어요.
관객: 미국에서는 활동가들이 빵집이나 이런 곳에 나오는 폐기품들을 찾아서 멋지게 요리해서 같이 나눠먹고 하더라고요.
진행자: 판매하는 쪽의 편의를 위해서 예를 들어 테이크아웃 컵이나... 일부 카페에서는 아예 머그컵을 지급 안하는 곳들도 있는데, 여러 가지 인건비 등 일회용컵을 쓰는게 비용적으로 더 싸니깐 그런 소비문화가 계속 생기는 것 같습니다. 편의를 위해서 환경을 파괴하는 패턴이 사용자들은 전혀 책임이 없고 느끼는 것 같아요.
관객: 내 눈앞에서 사라진다고 해서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니니깐 소비자들도 분리수거나 그런 것에 좀 더 신경을 써야할것 같아요.
“누벨바그 좋다. 주워 입고 주워 먹었던 시간. 영화 한편 찍은 느낌”
관객: 영화를 보면서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2G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고, 입고 있는 옷도 주워 입은 옷이고, 무우를 많이 얻어와서 김장하기도 하고, 장안사 가면 도토리가 많이 떨어져 있는데 주우면 도토리묵을 해먹기도 합니다. 작년에는 책상 주워서 손질해서 잘 쓰고 있어요.
“찾아보면 주울 게 널렸는데, 그 장소를 잘 모른다. 부자든 가난하든 잘 버리죠. 음식을 잘 모르니깐”
관객: 영화에서 줍는 것이 나의 윤리라고 말한 사람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잘 몰라서 그런다"고 말하는 당당함이 멋있어 보였어요.
줍는다는 것을 어떤 '운동'으로 실천하는 모습으로 보였어요.
저도 생수통이 아까워서 정수기에 받아먹고 하는데, 사람마다 그런 것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관객: 우리가 모를 뿐이지 그런 운동을 실천하고 시행하는 곳들이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진행자: 거시적으로 생각했을 때 원전 전기도 수요나 공급 측면에서 논쟁이 되는 부분인데, 전기 부분에 있어서도 쉽게 생각하면 당연히 모자른 것 보다 넉넉하게 있는게 좋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가 충분한가는 한번 고민해봐야 하는 지점인 것 같습니다.
관객: 궁금한 게 있는데, 영화에 <이삭 줍는 여인들> 원화가 나왔는데 그 그림 속 사람들이 먹을게 없어서 주웠던 건가요?
관객: 그림에 보면 이삭 줍는 여인들 뒤에 주인이 서 있는 걸로 보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옛날에는 생계가 어려워 남는 것을 나누어 먹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요즘에는 먹는 것이 상품의 하나라고 생각 하니깐, 애호박도 포장비닐 크기에 맞게끔 어느 정도 자라면 비닐을 씌워 더이상 크지 못하게 재배한다고 해요. 지금 우리가 사먹는 딸기나 토마토도 다 공장재 식으로 재배하고 있어요.
소비자들이 예뻐보이고 깨끗해 보이는 것을 찾기 때문 아닐까요. 유기농 무농약 이런 제품들도 사실 흙에서 키우지 않는다고 해요.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는 사람들이 점점 더 줄어드니깐 사먹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음식의 상품화가 점점 커지는 것 같아요.
진행자: 네. 오늘 2000년도 작품인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를 함께 감상했는데요. 지식 생산물에는 낭비가 없잖아요. 잊혀진 좋은 작품을 흘려보내지 않고 다시 발굴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지 않나 싶어 의미있게 생각합니다.
공동의 기억: 트라우마 (0) | 2018.05.03 |
---|---|
Out: 이반검열 두 번째 이야기 (0) | 2018.04.19 |
그럼에도 불구하고 (0) | 2018.02.19 |
[2017-12월 초록영화제] 우리가 알아야 할 그곳의 이야기 <소성리> (0) | 2018.01.04 |
[2017-11월 초록영화제] <여자답게 싸워라>, <아빠가 죽으면 난 어떡하지?> (0) | 2017.11.20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