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월 초록영화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Still and All, 2015) ㅣ다큐멘터리ㅣ90분ㅣ한국ㅣ감독 김영조
연출의도
지나간 시간들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
항구도시 부산의 원형질을 이루었던 곳으로 바지선과 대형 크레인이 즐비하게 놓여있는 도심 속의 이질적인 섬.
일제가 수탈을 위해 지었던 조선소와 전쟁 피난민들의 슬픔을 간직한 영도다리.
영도에는 우리의 지나온 삶과 역사가 생생하게 담겨져 있다.
두터운 작업복 속에 감춰진 퀴퀴한 땀 냄새 속에서 불꽃을 튀며 거대한 선박을 수리하는 용접공,
한줄기 삶의 희망을 갈구하는 피난민들을 달래주던 점바치들과 무속신앙이 아직도 골목마다 남아있는 이 곳 주변인들...
경제적 윤택함과는 거리가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이들의 삶은 언제나 강한 역동성과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은 변화하는 영도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주변부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을 담담하게 들여다 보며 이곳에 부는 변화의 바람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관객과의 대화
진행자: 영도를 배경으로 다큐를 찍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요?
감독: 특별한 이유는 없었어요. 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용접공이 아는 감독님의 영화에 엑스트라로 출연하셨는데, 그 감독님 응원차 갔다가 술자리를 함께 하게 됐어요. 영화 속에도 드러나지만 용접공 아저씨가 자부심이 대단하시고, 본인이 직접 영도를 소개해주겠다 해서 며칠간 함께 다녔습니다. 그때 해녀촌도 알게 되었는데요. 영도다리, 자살바위 정도 밖에 몰랐던 공간을 새롭게 알게 되었죠. 부산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영도가 낯선 공간, 다른 지역에 온 것 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 점에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지원을 받게 됐고 3년 간 기록을 해왔던 거죠.
시작하기 전에는 조선소, 해녀촌, 일제 잔재 이 정도의 소재였는데 본격적으로 기록하면서 영도에 점바치 공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공간이 개발 속에서 조용히 지나가지 않을 것이라는 나름의 생각에 우연한 기회에 시작했다가 필연적으로 해야되겠다는 사명감과 호기심을 느꼈습니다.
관객: 점바치 골목에 종사하는 사람은 얼마나 있나요?
감독: 영화 속에 나온 사람들이 전부예요. 많이 떠나시고 마지막 점바치 두 분이 남아계셨던 거예요.
관객: 점바치 할머니 촬영 섭외는 어떻게 하셨나요?
감독: 처음에는 영도다리만 계속 찍었어요. 그러다 배남식 할머니에게 조심스럽게 접근하면서 사연을 듣고 싶다 그랬더니 처음에는 경계하시다가 나중에는 뭘 촬영하는지 궁금해 하시더라고요. 할머니와 친해지는 방법이 점을 보는 것 밖에 없어서 점도 많이 봤어요. 영화 속 삼촌을 찾는 손님도 제가 소개해주고. 제가 계속 손님을 데리고 오니깐 미안해서인지 이야기도 해주시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카메라가 들어갔습니다.
관객: 해녀 아주머니는 지금 뭘하시고, 촬영할 때 심중을 어떻게 털어놓게 하셨는지 궁금해요.
감독: 해녀 아주머니는 다리가 안좋아 지금 해녀일을 안하고 계세요. 해녀촌도 없어지고 대신 전시체험관을 만든다고 들었습니다. 현존해 있는 해녀들이 있는데 좀 아이러니 하지요. 해녀 아주머니는 처음 촬영할 때부터 노래도 하고 자연스럽게 사연을 다 이야기 해주셨어요. 이 분은 해녀촌에서 하군에 밀려 계신 것 같았아요. 외로움이 있으셨던 건지 제가 말을 걸었을 때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반갑게 잘해주셨어요. 본인의 딸 이야기를 해주는 게 쉽지 않으셨을 텐데도요.
말씀하시는 것도 처음에는 못 알아 들었는데 계속 촬영하고 편집하다보니 무슨 말인지 들리더라고요. 물론 감수도 받았습니다. 또 가장 중요한 게 수중 촬영이었는데 이를 위해 직접 수중 촬영을 배워서 제가 계속 따라다니면서 찍었죠.
관객: 저는 이 영화를 두 번째 보는 건데 오늘은 관객이 많이 오셔서 실시간으로 관객반응을 느끼며 보니 색다르고 재밌기도 했습니다. 앞서 말씀하신 영화에 출연한 인물들이 다 자연스럽게 섭외가 된 것 같은데, 강아지 할머니는 어떻게 찍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감독: 강아지 할머니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 언젠가 찍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작업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날 점바치 할머니 일상을 멀리서 지켜보려고 아침부터 카메라 돌리면서 찍고 있는데, 어떤 할머니가 강아지를 업고 갑자기 화면 속으로 들어온 거예요. 그렇게 이 할머니를 쭉 딸라가면서 찍기 시작했어요. 할머니가 귀도 잘 안들리시고 대화가 원활하게 통하지는 않았지만 참 따뜻한 분이었습니다. 이 분의 따님도 카메라 의식하지 않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 나가서 굉장히 운좋게 촬영할 수 있었어요. 이 분들의 생활패턴과 동선을 다 알고 있어서 미리 앵글을 잡고 촬영하기도 했죠. 이번 영화는 전반적으로 출연 섭외도 그렇고 촬영운이 따라주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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