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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시민세상] 주민의 기억으로 담은 우동·중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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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MBC 라디오시민세상

<주민의 기억으로 담은 우동·중동 이야기>

 

 

● 녹음 : 2024. 1. 12. (금) 10:00-11:00

● 방송 : 2024. 1. 13. (토) 08:30-09:00(부산MBC 표준FM 95.9MHz)

● 제작/출연: 윤주(빨간집)

● 제작지원: 황지민(미디토리협동조합)

● 진행: 노주원

 

 

 

[e-book] 주민의 기억으로 담은 이야기 우동(佑洞)·중동(中洞)

http://www.hudcc.org/htm/story7.htm

 

문화예술 소통공간-해운대문화원

해운대 자연마을 성씨 이야기

www.hudcc.org

 

 

[오프닝]

 

안녕하세요.

부산 시민이 만드는 청취자 제작 프로그램 <라디오 시민세상>의 노주원입니다.

도시의 시간은 언제나 빠르게 흘러가고 있죠. 높은 건물들이 솟아나고, 변화하는 모습에 그 속에서 지나간 순간들을 놓치기 쉬운데요. 여러분은 현재 살고 있는 지역에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지 생각해 보셨나요? 거리마다, 골목마다, 집집마다 켜켜이 쌓인 주민들의 기억과 삶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오늘은 해운대구 우동과 중동 지역 주민들이 담아낸 지역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전하는 말씀 듣고 시작하겠습니다.

 

 

 

[본방]

 

MC 01 / 오늘 <라디오 시민세상>은 해운대구 우동·중동 지역에 대한 주민들의 기억을 찾아가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특별한 이야기를 소개하려 합니다. '빨간집'에서 역사 구술채록 사업을 진행한 윤주 님을 모셨는데요. 반갑습니다.

 

윤주 / 안녕하세요. 저는 빨간집에서 기록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윤주라고 합니다.

 

MC 02 / 해운대 다니다 보면 지명의 유래가 참 궁금했는데, 그것도 알 수 있겠죠. 어떤 뜻인가요?

 

윤주 / 우동과 중동이라는 지명 유래는 해운대에는 봄내라는 뜻을 가진 춘천, 춘천천이라고도 부르는 하천이 있는데, 혹시 들어보신 적 있나요? 춘천은 장산과 구곡산에서 발원해서 우동, 중동, 좌동의 일부를 관통하는데, 우동은 그 춘천천의 오른쪽 언덕에 있다는 데서 유래하였다고 전해지고 있고, 중동은 이름 그대로 해운대의 중심부에 위치하는 지역이라는 이름입니다. 

 

MC 03 / 오른쪽에 위치한 우동, 가운데에 있는 건 중동, 직관적이네요. 보통 해운대라고 하면 관광지를 떠올리잖아요. 또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도 있을 것 같아요.

 

윤주 / 해운대하면 해운대해수욕장이 떠오를 만큼 큰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저 역시 이번 작업에 참여하기 전에는 해운대해수욕장과 달맞이 정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우동과 중동을 해운대라고 하는 하나의 지역으로 묶기에는 조금 다른 양상과 면모를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해운대에는 지금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자연마을인 운촌마을을 포함해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없어진 승당마을, 또, 해운대도서관 자리에 있었던 연못 주위로 못안마을과 장지마을,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삶의 터전을 꾸렸던 설분곡마을, 새마을, 미군 부대와 관련이 있는 삼거리마을, 유격대마을 등이 있고, 중동에는 온천이 있었던 온천마을, 춘천 상류의 대천마을 등 그 외에도 많은 마을이 형성된 곳이었습니다. 바닷가 쪽 마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마을은 현재 아파트나 건물 등으로 바뀌어 도로명이나 공원명으로만 남아있습니다. 

 

MC 04 / 네, 그렇죠. 지금은 우리고 보고 있는 아파트가 대부분인데요. 해운대는 온천으로도 참 유명하잖아요. 온천과 관련한 역사도 궁금합니다. 

 

윤주 / 역시 해운대는 온천을 빼놓을 수가 없는데요. 1905년을 전후로 일본인 자산가들이 온천을 발견했다고 알려져 있고요. 1937년 동해남부선이 개통되면서 온천 이용객이 증가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해운대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고요. 일제강점기 이전에 출생한 운촌마을 주민의 기억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때 조선인들의 온천 출입은 굉장히 제한적이어서, 1년에 두, 세 번 정월 초나 8월 보름 때만 미리 1년 치 비용을 내놓고 목욕을 하러 갈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해운대에는 당시 온천과 숙박을 결합한 형태인 온천여관이 많이 생겨났는데, 1935년에 서양식 근대호텔로 만들어진 온천호텔, 지금의 해운대구청 자리에 있었던 온천풀장, 할매탕, 송도각 등 그 주변으로 많은 곳이 있었습니다. 할매탕이라고 부르던 곳은 온천 중에서도 원탕이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여러 온천들이 배수관을 통해 물을 당겨 썼다고 해요. 대부분은 사라졌지만, 할매탕, 송도탕이라는 이름으로 온천이 몇 군데 남아 있고요. 그 주변으로 가면 예전 온천여관의 흔적이 남은 건물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해운대해수욕장 역시 역사가 숨겨져 있는데요. 한국전쟁을 전후로 해운대에는 많은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미군이 주둔하면서 해운대해수욕장의 일부가 미군전용휴양지, 일명 비치클럽이었습니다. 미군들은 백사장 가운데 철조망으로 가로막고 그 안에서 수영복을 입고 일광욕을 했는데, 그게 당시 어린 시절을 보낸 중동 주민들에게는 약간의 재미있는 경험을 주기도 했습니다. 군인들에게 초콜릿이나 껌 같은 당시 흔히 보기 어려운 간식을 얻어먹기도 하고, 미군이 마시고 남긴 맥주캔을 얻어다가 팔아서 백사장에서 아이스께끼와 바꾸어먹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런 기억은 그 주변에 살았던 중동 주민들의 공통된 기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MC 05 / 해운대의 역사를 새롭게 알게 되어 놀랍고 재밌습니다. 특히 해수욕장의 일부가 미군전용휴양지로 사용됐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 얘기인데요. 주민들의 삶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어떻습니까?

 

윤주 / 처음 구술자로 소개받았던 분은 어업에 종사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일단 미포나 청사포 쪽이 아니라 동백섬 주변으로 어업을 해왔다는 것을 사실 저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해운대를 해수욕장이라는 개념으로 생각하는 이런 외부인의 시각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해운대는 입지적으로 봤을 때 바다와 아까 말씀드린 춘천천 그리고 수영강이 만나면서 멸치 황금어장이 만들어졌습니다. 어업을 하는 주민 분들이 “멸치가 운촌에 들어오면 살아서 못 나간다.” 이런 말을 공통적으로 해주셨는데요. 주로 운촌마을과 승당마을 주민들이 동백섬 주변에서 멸치어업에 종사를 했다고 합니다. 해운대멸치라고 하면 지금은 생소하다는 느낌을 받으실 것 같은데요. 해운대의 멸치어업 역사와 관련된 기록은 백여 년 전부터 찾을 수 있습니다. 그만큼 해운대 멸치는 꽤 이름이 알려져 있었지만, 1950년대부터 동백섬까지 흘러들어오던 춘천천이 복개되고, 땅이 매립되고, 광안대교가 생기는 등의 변화 때문에 멸치잡이도 잘 되지 않아 지금은 멸치를 잡지 않고 삼치어업만을 한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여러 구술자 분께서 불배잡이 등으로 잡은 멸치를 삶고 건조했던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해주셨고 그 때문에 지금은 사라진 멸치잡이의 역사가 조금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또한, 동백섬의 누리마루 쪽에서 물질을 하는 해녀분들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해녀분들 역시 예전에는 20명 넘게 활동을 해왔지만, 지금은 5, 6분 정도만 남아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바다라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해수욕을 하고 백사장을 거니는 곳이기도 하지만, 이곳 주민들에게는 무엇보다 삶의 터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MC 06 / 운촌마을은 지금 남아 있는 유일한 자연마을이잖아요. 그곳 주민들의 추억을 듣는 것도 참 의미 있는 일이었을 것 같은데, 구술채록 과정에서 주민들하고 관계 맺고, 자료수집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윤주 / 자료수집 하면서 사진과 관련해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어떤 구술자 분과 해운대도서관 분관 자리에 연못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나누다 연못 사진을 수집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부탁을 드렸더니 구술자분이 직접 해운대도서관 쪽에 연락해서 물어봐 주셨어요. 도서관에서는 사진이 있는지 없는지 확실치 않은 상황이라 포기해야 하나 했는데, 구술자분이 다른 분께 수소문을 해주셨어요. 그분께서 하시는 말씀이 해운대여중에 예전에 수영부가 있었는데 거기 아이들이 연못에서 수영 연습을 했다더라. 그러니까 사진은 해운대여중에 있을 수도 있다고 알려주셨어요. 그래서 해운대여중에 전화했더니 이런저런 사진이 많은데 언제든지 보러 오라고 하셨어요. 그때 정말 “만세”를 외치고 싶을 만큼 기뻤던 것 같아요. 자료를 찾은 것도 기뻤지만, 이런 마음이 모여 만든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정말 감사하고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MC 07 / 네, 해운대의 다양한 모습과 이야기를 구술로 전하는 작업이 해운대를 더 다채로운 시선으로 이해하게 해 줄 것 같습니다. 이번 구술채록 작업이 어떤 의미로 남을까요?

 

윤주 / 해운대를 단편적으로만 알던 제게 혹은 저와 같은 외부인에게 해운대의 모든 모습을 남기고 알리고 공유하지는 못하지만, 사라진 모습과 앞으로 사라질지도 모르는 모습을 남기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6월부터 11월까지 많은 주민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쩌면 우리가 기억만을 남기 것이 아니라 그립고 사랑하는 마을과 그때의 사람들을 함께 남겨놓는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린 이야기 외에도 해운대의 다양한 모습을 기회가 된다면 책으로 만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현재는 해운대문화원 홈페이지에서 e-book으로 보실 수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MC 08 / 네. 오늘은 주민의 구술로 담은 해운대구 우동·중동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드렸습니다. 자세한 말씀 나눠주신 빨간집 윤주 님 고맙습니다. 

 

윤주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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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13일_[대담]주민의 기억으로 담은 우동·중동 이야기/[사람과 사람]암을 이겨낸 주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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