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강 사업이 한창이던 지난 겨울, 전국의 미디어 활동가들이 모여 '모의'를 했다. 그리고 결의했다. '4대 강의 진실을 찍자'하고. 전국미디어네트워크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젊은 독립영화 감독들이 직접 캠코더를 들고 4대 강을 파고들었다. 시린 강바람이 뺨을 때렸고 혹한이 뼛속 깊이 파고들었다.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현장 노동자들과 부딪히기도 했다. 어떤 지원도 없이 투혼으로 찍은 독립영화들이 하나씩 편집되어 마침내 세상에 나왔다.
지난달 31일 저녁 시사회를 겸한 부산 첫 상영이 연제구 거제동 공간초록에서 있었다. 15~20분짜리 짧은 다큐 4편이 꼬리를 물고 돌아갔다. 강·땅·노동자·추억을 각각 부제로 단 다큐들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4대 강 사업을 하는지를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우리 강의 파괴·훼손 실상은 언론들이 보도한 것보다 휠씬 심각했다. 숨을 헐떡이며 죽어가는 누치, 포클레인에 짓뭉개진 단양쑥부쟁이, 남한강의 예쁜 강길을 빼앗긴 아이의 슬픈 눈망울, 영주댐 건설로 농토를 빼앗긴 농민의 분노…. 농민은 강소주를 들이켜며 소리를 질렀다. "모든 게 바뀌었어. 이럴 순 없어. 이건 폭격이야, 폭격!"
불안한 상황에서의 촬영을 전해주듯, 캠코더는 자주 흔들렸다. 화면이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영상과 음향 사이 사이에 젊은 감독들의 신음이 배어들었다. "더 큰 재앙만이 이 재앙을 막을 것 같았다…." 포클레인 굉음은 그 신음소리마저 가볍게 지웠다. 산허리가 잘리고, 강이 막히고 있는 데도 강변엔 '행복 4江' 깃발이 휘날렸다.
우린 그동안 무엇을 했던가. 많은 사람들이 '4대 강은 끝났어, 어쩔 수 없는 게지'하며 잊고 있거나 포기하고 있을 때, 젊은 미디어 활동가들은 기록정신을 불태우고 있었다. 영화를 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진 건 강의 아픔 때문만이 아니었다. 맨손으로, 캠코더 하나를 무기로 타당성이 약한 국책사업에 항거하는 이들이 존경스럽기도 했다. 전국미디어네트워크는 서울 부산을 시발로, 전국을 돌며 공동체 상영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4대 강 사업은 오는 연말께 거의 마무리된다. 빠르다. 시끄러웠던 지난 여름의 타워크레인 농성도, 종교계의 반발도, 반대 촛불시위도 다 돌려놓고 벌써 완공 채비다. 속전속결 토목공사의 정수를 보는 듯하다. 지자체들은 보 이름에 자기 이름을 넣겠다고 신경전이다. 강을 막은 게 자랑이라고! 다들 정상이 아니다.
완공에 앞서 기억해둘 것이 있다. 완공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4대 강 사업을 반대해 온 운하반대교수모임은, 4대 강 사업이 완공된 후 매년 재정에서 지출될 유지관리비가 5700억 원에 달하고, 수자원공사 이자를 더하면 연간 1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큰돈이 나올 곳도 아닌데, 재정을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타당성과 경제성으로 보자면 4대 강 사업은 진작 백지화 되었어야 옳았다. 그런데 정작 백지화된 것은 영남권이 국토균형발전 차원에서 목놓아 외쳐온 동남권 신공항이었으니….
이 순간에도, 우리 강은 평온치 못하다. 생태 1급지인 천연기념물 일웅도(을숙도)가 무참히 파헤쳐졌고, 낙동강변에 남은 유일한 옛길인 창녕 개비리길이 폭 3m 자전거 도로에 파묻힐 판이다. 4대 강의 자연파괴는 끝이 없어 보인다.
'강, 원래'의 명징한 '콤마(,)'는 쉬엄쉬엄 흐르고 싶은 강의 외마디 외침 같다. 그러면서 '강이 원래 그러했듯이, 원래의 강으로 돌아가자'고 호소한다. 되돌아갈 수 있을까? 강과 함께 산다는 공동체의 확고한 의지가 있다면 못할 것도 없다. 가수 강원래가 그걸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구준엽과 짝지였던 강원래는 인기 절정의 순간에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하지만 강원래는 거뜬히 재활에 성공, 휠체어에 앉은 채 방송 출연을 하고 앨범까지 냈다. 인간승리다. 우리의 '강, 원래'도 그렇게 일어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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