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밤톨김은민(초록영화제 전 운영위원, 미디토리 현 대표)
벌써 10년이 훌쩍 지나버렸습니다. 초록영화제와 첫 만남은 <공간, 초록>을 빼놓고는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처음 미디토리에 입사하고, 한달 뒤 저는 초록영화제를 운영하고 있는 여러 주체들 중 한 곳이 미디토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지금의 커뮤니티 시네마는 '공동체 상영'이라는 이름으로 한 달에 한 번 극장에서 보기 힘든 독립영화들을 같이 고민하고 주제를 정해 관람하는 일종의 새로운 영화 보기 문화 운동이었는데요.
초록영화제는 <공간, 초록>이라는 곳에서 출발했습니다. 이 공간은 지율스님이 몇몇 지인 분들이 부산 교대 앞 비어 있는 공간을 빌려서 만든 열린 공간이었습니다. 누구나 이 곳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고, 2006년 천성산에 원효터널 공사를 반대하며 도룡뇽 소송을 했던 지율스님은 사람들에게 도심 속 비어있는 공간을 만들자고 제안에서 출발했습니다. 자발적으로 이용하고 누구나에게 열려있는 공간으로, 초록영화제도 이곳에서 안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름에는 마당에 포도알이 주렁주렁 열리고, 이따금 저녁 상영에 모기들이 날라들어 영화 보는 관객들이 불편하기도 했지만 뒤돌아 생각해보면 초록영화제는 이 공간과 정말 잘 어울리는 영화제였습니다.
처음에는 영화제 상영 준비를 돕는 일로 영화제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초록이라는 이름답게 초기에는 주로 환경과 인권을 주제로 한 독립 영화들을 주로 보고 관객들이 모여앉아 이야기 나누는 방식으로 상영이 진행되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난 후 관객들이 둘러앉아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통해 오락으로서 영화를 소비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영화를 둘러싼 주제와 이면의 이야기를 끌어내고 공감하는 영화제로 만들어 왔습니다. 한 달에 한 번이지만 관객분들은 어김없이 이 공간에 매료되고, 영화가 주는 메세지를 탐구하고 토론하면서 밤이 늦도록 영화제의 열기는 식지 않았습니다.
2013년 이명박 정권 시절에 4대강 사업이 가장 큰 사회적 이슈였었습니다.
<강, 원래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2013년 금강, 낙동강, 남한강, 영산강 등 4대강 지역의 활동가들, 독립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이 함께했습니다. 미디토리는 당시 plogtv라는 이름으로 제작 활동을 함께 했었고, 이 다큐멘터리들의 부산지역배급위원회를 맡아 공동체상영을 담당했습니다. 제 기억엔 극장 상영 이전에 이미 초록영화제를 통해 <강,원래 프러젝트>의 상영작을 부산 시민들에게 공개했는데요.
당시 4대강 공사가 2011년 공사 완공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지만 절망에 빠지지 않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 달려갔던 사람들이 알리고자 했던 이야기들이 옴니버스로 담긴 작업이었습니다.
<강, 원래 프로젝트>를 보신 관객분들이 취지에 공감하셨고 입소문도 많이 내주셨습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초록영화제를 통해 오셨던 관객분들이 부산의 국도가람예술관에 극장 상영 당시, 재방문하시기도 했는데요. 당시만 해도 알게 모르게 정부를 비판하는 영화들을 극장에서 상영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었습니다.
초록영화제는 공동체상영으로 극장에서 만나기 힘든 영화들을 맨 처음 지역에서 소개할 수 있는 검열이 없는 몇 안 되는 영화제였습니다.
그 배경에는 누구의 지원도 받지 않고 오롯이 관객분들의 자발적인 후원으로 영화제를 이끌어 갈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다시 생각해 봅니다.
또 뜻을 같이 하고자 모인 감독들이 각자 4대강을 주제로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사안을 알리고, 지역의 배급위원회가 상영을 원하는 곳에 디브디를 보내고, 공동체의 요청 시에는 감독들과 영화 상영회를 직접 기획히기도 했습니다. 그때 초록영화제는 부산지역 공동체 상영의 물꼬를 트는 영화제였고, 늘 초록영화제를 시작으로 지역으로 영화들이 소개되고 퍼져나갔습니다.
상영본만 있으면 언제든 영화를 상영하고 관객들과 만나게 해준 <공간, 초록>이 있었고 취지를 공감해 모여든 초록영화제 운영 주체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날 상영과 관련된 더 자세한 내용은 위 블로그 <강, 원래> 4대강, 어디까지 가봤니? 를 참조하세요
이명박 정권 시절, 아무것도 표현할 수 없던 무기력이 짓누르고 있던 때 관객들은 힘을 내서 영화를 보러 오셨고, 반대 목소리를 내고 각자의 방식으로 연대하는 영화제를 함께 만들어 왔습니다.
2006년에 도심 속 생태 공간으로 문을 열었던 <공간, 초록>이 2015년에 문을 닫았습니다.
여러 가지 운영난도 있었고 적지 않은 아쉬움이 존재했습니다.
<공간, 초록>은 도심 속 바쁜 일상의 쉼터 같은 공간이라고 많은 분들이 회상했습니다.
십 년의 세월 동안 자발적으로 운영되어온 공간이 문을 닫아야만 했을 때 초록영화제도 존폐를 결정해야 했는데요.
하지만 공간을 넘어 초록영화제를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찾고자 했고 영화제 운영진들은 자발적으로 영화제를 이어나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비록 공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공간, 초록>의 의미를 살려, 영화제를 지속하는 것!
그리고 몇 년간은 지역의 이슈가 있는 공동체와 직접 결합해 영화제를 기획하기도 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영화제 상영을 진행했습니다.
2016년 5월 /부산 생탁 노동자들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박배일 감독 <깨어난 침묵> 공동체 상영회 현장
장소 / 부산 양정의 비밀기지
한동안 초록영화제는 부산 지역의 이슈와 함께했습니다. 만덕5지구의 주민들의 삶의 터가 무너져 내리고 있을 때 영화제는 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영화제를 기획해 만덕 이야기를 알려내고 공감하고자 했습니다.
2015년 9월 재개발로 인해 사라져가는 마을을 지키고 있던 ‘만덕 주민공동체’와 함께 영화 〈비카인드 리와인드〉를 상영했습니다. 지난 2016년 5월에는 노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생탁’의 파업 노동자들과 영화 〈깨어난 침묵〉을 함께 보고, 2019년 8월에는 ‘부산 반빈곤센터’ 팀과 연계하여 영화 〈어른이 되면〉을 상영하기도 했습니다.
<공간, 초록>을 넘어 지역사회 단체와 상영 주체들과 만나 콜라보하고 영화제를 같이 기획하고 확장해 나갔습니다.
매년 4월이 되면 아직도 진행 중인 세월호 참사를 알리기 위해 영화를 같이 보고 그날의 이야기를 무겁지만 꺼내놓곤 했습니다. 관객분들은 영화를 보고 나서 관객 쪽지에 짧은 감상평을 남겨주시기도 하는데요.
" 슬픔은 개인의 것이기도 하지만 모두의 것입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또 부산여성회와 공동 기획으로 준비했던 2019년 8월 초록영화제 [파도 위의 여성들]도 기억에 남습니다.
여성에게 자신의 몸의 권리를 되찾아주기 위한 프로젝트였는데요.
여성이 자기 몸에 대한 권리를 되돌아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관심 있는 주제가 있는 단체들과 적극적으로 기획을 같이하기도 한 상영회였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시려면 아래 링크를 확인해 주세요
2019년 11월에는 '민주시민교육원 나락 한 알'과 함께 기획했던 영화 [동아시아 반일 무장전선]
근현대사 연구자 서용태 선생님의 강의까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로서는 다소 낯선 6~70년대 일본의 시대상과 전공투 세대에 관한 이야기 들을 수 있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을 보시려면 아래 링크를 확인하세요
이처럼 인권, 환경, 사회문제 등 다양한 주제의 영화들을 여러 단체와 기획 상영하고 부산의 단체들과 부산 시민들과 만나 호흡했습니다.
공동체 상영 초기부터 독립영화들을 부산 관객분들에게 소개해왔고, 다양한 주제의 영화들과 관객들과 만나왔습니다 .
지난 10년간 독립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은 오히려 척박해져 갔습니다. 멀티플렉스 위주로 극장이 넘쳐나지만 오히려 독립영화 개봉 회차는 줄었습니다.
또 하나는 상영 환경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넷플릭스와 OTT 서비스를 통해 영화들이 소비되는 환경으로 변모했습니다.
초록영화제가 아니면 볼 수 없었던 영화들은 노트북과 개인화된 공간 속에서 더 쉽게 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극장에서 보기 어려운 독립영화, 다큐멘터리 등 다양성 영화를 여전히 보고 싶어 하고 좀 더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관객은 존재할 거라 생각합니다. 또 초록영화제는 관객과 함께 만들어가는 영화제이기도 합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각자의 감상을 나누면서 영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고 영화를 재해석하고 영화에서 드러내지 못한 부분까지 읽어내는 적극적인 주체로 거듭났습니다.
이런 관객들이 있기 때문에 수동적인 영화 소비자가 아닌 적극적인 해설자의 역할까지 가능하게 했습니다.
극장에서 보기 힘든 독립영화, 다큐멘터리, 다양성 영화를 꾸준히 상영하고 때로는 찾아가는 영화제로, 부산 관객들과 만나왔으며 또 올해는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만날 수 없는 대신 온라인 상영 방식으로 영화제를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초록영화제 초기는 주로 환경과 관련된 주제의 영화들을 봤다면 주제는 점점 인권, 사회문제, 성 소수자, 여성 등 넓어졌습니다.
10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수없이 많은 관객분들과 만나오면서, 전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공동체상영을 지속하고 있는 영화제가 되었습니다. 코로나 19에도 영화제를 찾아주시는 관객분들의 힘은 초록영화제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미디토리가 운영 단체로 결합하는 초록영화제는 마지막이지만 초록영화제는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지난 십 년간의 모든 활동을 전부 기록할 수 없어 아쉽지만 영화제와 함께했던 빛나던 순간들을 남겨봤습니다.
이제 안녕~
"공간초록에서 시작된 인연으로부터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네요. 그동안 든든하게 초록영화제와 함께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은민님을 비롯한 미디토리 구성원분들 덕분에, 초록영화제가 이렇게 지속될 수 있었습니다. 부산을 대표하는 미디어 기업 미디토리가 앞으로도 멋진 활동을 이어나가시길 바랄게요. 이제 초록영화제 관객으로 다시 만나요 . 그간 참 감사했습니다(뭉클)"
- 지빈, 중현, 수경, 주영, 가현 드림 -
아래는 독립영화를 온라인 서비스로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싸이트를 소개합니다.
인디그라운드/ 독립영화 소식/ 온라인상영관/ 독립예술영화D/B
퍼플레이 / 여성영화 중심 온라인상영관
그린아카이브/ 서울환경영화제/ 환경영상콘텐츠 /공동체상영신청
팝업시네마/공동체상영온라인상영 플랫폼
시네마달/다큐멘터리 배급/ 공동체상영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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