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토리가 어느 덧 열두살이 되었습니다. (열살이 얼마전이었던 것 같은데...)
작은 회사가 열두해를 버텨왔다는 건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신생기업도 아니고 그렇다고 중년기업이라고ㄷ 할수도 없는, 여전히 불안하지만 용을 쓰면 버텨지기도 하는 딱 그정도의 내공을 지닌...그저 그런 의미일까요? 그렇다해도 미디토리의 열두살은 조금 다르게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하다가 미디토리언들 각자의 열두살은 어땠는지, 어떤 시대를 지내왔는지 떠올려보기로 했어요. 열두살이면 특별한 사연이 있지 않는 이상 초등학교 (또는 국민학교 ㅜ.ㅠ) 5학년이었을 거에요.
"각자의 5학년 때로 돌아가볼까?"
#김영 #198x #12세
"피아노를 무척 배우고 싶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지인 할인으로 학원을 다니게 되어 무시를 당해도 눈치밥 먹으며 버텼다. 손이 못 생겼다고 구박해도, 그랜드피아노로 받는 원장님 레슨에 누락되어도 꾹꾹 참았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이 나가는 큰 연주회가 아니라 학원내 작은 발표회에 나간 것은 많이 서러웠다."
" 5학년 선생님께서 학급임원이 아닌 나에게도 연극 '효과음'을 담당하는 역할을 주셨다. 어찌나 열심히 준비했는지 아직도 효과음 재생 버튼을 눌러야하는 타이밍이 기억난다. 조용조용 소극적으로 묻혀 살던 내가 밖으로 드러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셨다. 선생님 덕분에 성격이 달라지지 않았나 싶다."
"열두살이라는 나이가 생각해보니... 5학년이 되면 이제 내가 형님인데, 언니인데! 이런 느낌으로 학교 다니다가, 6학년으로 올라가면 다시 조금 쑤그러져있다가 점점 능숙함이 생기기 시작하는 그런 나이인 것 같다. 세상을 다 아는 듯한 마음도 들고 반항도 심해지고.."
"열두살의 미디토리도 그런 느낌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저학년 때보다는 능숙하게 해내기 시작하지 않나.. 그런 시기인 것 같다."
#정유진 #200x #12세
"나는 주근깨 소녀였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레이져치료를 받았다."
"발랄하고 꿈이 많았다. 마술사도 되고 싶었고, 화가도 되고 싶었다. "
#이세은 #200x #12세
"초등때 졸업사진이다. 내 인생 최고의 리즈 시절이라고 할만큼 인기가 있는 편이었다. 친구들이랑 노는 걸 좋아했다. 쉬는시간에 아임그라운드게임을 자주 했다. 방과후 친구들과 학교에 남아서 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놀기도 하고, 우루루 남포동에 영화보러 가기도 했다. 사진 속 이 날은 내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졸업사진을 찍으러 간 날이다.
"열두살 무렵 나는 하루에 옷을 세번씩 갈아입을 정도로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았고, 당시 유행하던 박지윤의 '성인식' 춤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인싸였다. 성격은 그때나 지금이나 털털한 것에 변함없으나 현재 나는 꾸미는것에 관심이 없다. 반에 공주같은 애들 따라다니면서 놀렸다. 고백편지 같은 걸 종종 받곤 했는데, 주로 적혀있는 내용은 내가 생긴거랑 다르게 털털하다는 것..."
#서수원 #200x #12세
"그 때 망미동 살았다. 동천고를 졸업했다. 봉고를 타고 다녔다. 망미동, 광안동 등 나는 수영구를 벗어난 적이 없다. 망미동 근처에 광안리바다가 있는 줄 몰랐다. 수영구 토박이지만 바다에서 거의 안놀았다."
"슬라이드폰을 초등학교 4,5학년때부터 썼다."
"그 때 나의 별명은 '백돼지'였다. 반에서 통통하고 하얀 편에 속했다. '흑돼지'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도 있었다. 그 땐 그게 컴플렉스가 아니었다. 살짝 통통한 정도였고 친구들과도 잘 지냈던 기억이 난다."
"곤충채집하러 아빠랑 많이 다니고, 친구네 집안끼리 산에가서 곤충잡으러 다니곤 했다. 요즘에도 유튜브 보면 곤충 유튜브 자주 본다."
"나는 운동을 안좋아한다. 운동하는 친구들이 운동장에서 끝나길 기다렸다가 같이 집에 가곤 했다. 그 때는 컴퓨터게임 별로 안했으니까…"
#박지선 #199x #12세
"나는 나이의 끝자리와 년도의 끝이 항상 같다. 1992년 그때 유행했던 음악은 서태지와 아이들 <난 알아요>, 신승훈 <보이지않는사랑>, 넥스트 <도시인>, 현진영 <환상속의 그대>... 오늘 아침에 <도시인>을 들으면서 왔는데 가사가 너무 좋았다. 번잡한데 모두가 외롭다는 표현... 캬...이때가 음악 장르가 아주 발전하는 시기, 한국 가요계 전성기였던 것 같다. 장르도 다양하고 대중가요의 스펙트럼이 넓었던 것 같다."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를 좋아하고 보기 시작했는데, 브래드피트, 레오나르드디카프리오 나오는 영화를 친구랑 같이 봤다. 19금이지만 [가을의 전설] [토탈이클립스]..를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 봤다. 특히 <토탈이클립스>는 '시'를 처음 생각하게 한 영화였다. 주인공인 랭보 시집을 사서 읽었다. 그 때부터 염세주의자 기질이 생긴 것 같다."
"[연인] [원초적본능] [보디가드] 이런 영화들도 봤다. (그 당시 비디오가게 사장님은 19금이라도 작품성이 있거나 유명한 영화는 살짝 빌려주셨음) 그 땐 여성이 주인공인 몇안되는 영화였고, 저런 여성들이 멋진 여성인건가? 질문하며 나름의 여성상을 떠올리고 동경했던 것 같다. 여성을 잔뜩 대상화한 영화들이었지만, 자신의 주관을 가진 여성 캐릭터였기에 더 몰입해서 봤던 것 같다. " (어린시절에는 여성에게 관능적 매력이 있어야 잘생긴 남자가 도와주는 줄 알았음. 그래서 당시 나는 이번 생은 망했다고 생각한게 아니라 나를 도와줄 남성은 없을테니 내몸은 내가 지켜야겠다고 생각하며 1kg 아령을 샀던 기억이...😆😆😆)
"그 시절 영화를 함께 봤던 같은 반 친구와 지금도 최고의 베프로 연락하고 지낸다."
"아빠랑 매주 일요일 아침 등산 다녔다. 그 때는 그게 죽도록 싫었는데, 아빠와의 가장 좋은 추억이 되었다. 금정산의 축축하고 싱그러운 흙의 촉감과 냄새가 아직 기억난다."
#황지민 #199x #12세
"어릴 때 반여동에 살았다. 장산초등학교 성적표가 있더라."
"6학년 때 롤링페이퍼도 발견했는데, '공부잘해라', '맏며느리감이다' 이런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제가 생각해도 일탈이라고는 안하고, 주어진 일에 묵묵히 노력하는 책임감이 강한 아이였다."
"복제양 돌리 이야기가 일기장에 있었다. 그 당시 98년 IMF로 아빠가 힘들어하신다는 이야기도 적혀있었다. 일기장을 읽어보니 누나로서의 책임감이 느껴졌다. 부모님이 맞벌이셔서 동생을 돌봐야하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김은민 #199x #12세
"열두살 때 나에게 쓴 편지가 있더라. 사회생활하면서 데쓰노트를 줄곧 써왔는데, 어릴 때부터 나는 이런 기록을 많이 남긴 것 같다. 5학년 때 학교생활을 기록한 쪽지도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령에서 나와 독립할 때 이 편지와 쪽지들을 챙겨왔다. 지금도 이사다닐 때마다 꼭 챙겨 다닌다."
"내가 다닌 고령의 초등학교엔 한 반에 12명이 있었다. 나는 매일 공상을 즐기는 아이였다.
이렇게 미디토리 구성원들의 열두살을 들여다보니, 지금의 미디토리가 10년이 넘도록 유지되는 비결을 알 수 있었다.
구성원들은 모두 책임감+ 정의감 + 자신만의 '결'을 지키며 자라온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각자 살아온 토양은 다르지만 지금은 '미디토리'라는 유기체를 만들어가며 지역미디어활동가로서의책임과 실천 속에 자신의 삶을 단단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열두살을 보내고 있는 미디토리
조금은 더 신중해지고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날렵한 근육을 키워가는 건강한 조직으로 거듭나길!
글/정리. 고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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