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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미래유산] <산만디 이야기>('부산 산복도로'편)

local & community/부산 미래유산 시리즈

by 미디토리 2023. 9. 26.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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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미래유산 콘텐츠 시리즈]  

 

산만디 이야기

- 부산 산복도로' -

 

부산미래유산은 근현대 부산을 배경으로 한 사건, 인물 또는 이야기가 담긴 유·무형의 문화유산 중 미래세대에 남길 만한 가치가 있는 유산을 말하는데요. 부산시 미래유산보존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선정되며,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총 72건이 선정되었습니다.  미디토리는 올해  부산미래유산에 주목했습니다.  올해초 부산시 문화유산과에서 시행하는 미래유산 콘텐츠 지원사업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고, 올해 부산미래유산과 관련한 세 편의 파일럿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미디토리가 주목한 두번째 부산미래유산은 2019년에 선정된  <부산 산복도로>입니다. 

‘산만디 이야기’ 를 영상으로 먼저 만나보세요! 

https://vimeo.com/893599225

 

‘부산의 산복도로’를 들어보셨나요? 

부산시 중구에서 동구에 이르는 산복도로는 1964년 준공된,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도로이자, 부산 정체성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장소입니다.  부산의 지형적 특징과 도시개발의 과정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공간적 가치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요. 

 

살기위해 부산을 찾고, 산으로 올라갔던 사람들의 역사

산복도로 주변 산동네는 일제강점기 식민지 노동자들의 거주지이자, 해방 후 귀환한 동포들이 정착한 곳이기도 합니다. 또 6.25 전쟁으로 인한 피난민들이 정착한 곳입니다. 경제 개발 시기에는 부산으로 몰려든 서민들이 집터를 찾아 정착하는 등 시대마다 품고 있는 역사적인 서사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장소입니다.  부산의 산복도로는 단순한 물리적 경관을 넘어, 역사적, 지역적, 생활사적 가치를 지닌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라 할만 하지요.

 

산복도로(山腹道路)란? 

사전적인 의미로 산복도로(山腹道路)는 산의 중턱을 깎아 만든 도로를 말합니다. 

산허리를 베어 터를 내고 닦은 산복도로의 형성은 산동네 사람들의 생활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전국에는 이러한 산복도로가 있는 지역들이 있는데요. 부산의 산복도로에는 일제강점기 노동자, 귀환동포, 피란민, 이촌향도민들이 몰려들면서 원도심 주변 산 위에 삶의 터를 잡으면서 부산의 산동네가 형성되었고, 이 산동네의 허리를 가로질러 길을 낸 것이 산복도로입니다. 이러한 풍경은 부산이 갖는 독특한 풍경이자, 부산의 지역성을 드러내는 특징이라고 합니다.

 

 

부산 최초의 산복도로는? 

부산 최초의 산복도로는 1962년에 착공해서 1964년 준공된 초량 산복도로입니다. 

“주민들을 위해서 산복도로를 만들기 시작하는 것은 1960년대 초반부터 출발하죠. 초기의 산복도로 계획은 현재 범곡 교차로라 일반인들은 교통부 로타리라 불리는 곳이죠. 거기에서 안창마을 쪽으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가다가 성북시장으로 해서 좌천동 그리고 수정동 초량으로 이어지는 지금 현재 금수사 앞자락 바로 밑에 과거에 초량 목장이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연립주택단지가 되었는데 거기까지 하는 것이 맨 처음 시작되고, 그 다음에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지금 산복도로 전시관이 있는 초량쪽을 거쳐서 그리고 민주공원 옆쪽에 영주 삼거리로 해서 메리놀 병원까지 가는 이 단계가 두 번째 단계로 이렇게 지금 추정이 되고요. 그 다음에는 70년대에 들어서서는 민주공원 아래에서 보수동을 거쳐 가지고 대신동으로 연결하는 망양로가 또 만들어지는 이런 건설들이 생겨나는 거죠.” (김한근 /  부경근대사료연구소 소장 인터뷰 중)

 

 

 

 

이렇게 서구 서대신동에서 시작하여 중구 보수동, 대청동, 영주동, 동구의 초량동, 수정동, 좌천동, 범일동, 부산진구 범천동에 이르는 약 10km 도로가 부산의 대표적인 산복도로 망양로(望洋路)입니다. 이 외에도 영도 산복도로, 남부민 산복도로 등이 개통되어 산 위와 아래 도심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 근현대사 100년을 품다

'부산은 산복도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부산을 대표하는 풍경이 되었는데요. 비단 부산의 지형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산복도로라는 길과 길 사이에는 부산 근현대 100년의 생활사가 압축되어있기 때문인데요. 특히 수정산 일원의 산복도로는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 일제강점기 부두 노동자들에서, 한국전쟁기 피란민, 1960∼70년대 산업화시기 도시노동자들의 일상사를 품고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죠. 

 

“안창마을 들어가는 입구 쪽에서 좌천동 성북시장 있는 일대로해서 쭉 이렇게 서면 저 멀리로 해서 둘러보면은 6,70년대 주거 흔적들 7,80년대 주거 흔적들 그리고 이제 8,90년대 그리고 2000년대 부산의 도시 변화상들을 쭉 볼 수가 있는데요. 부산의 산복도로라 그러면 거의 부산을 상징하는 도로다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세계적으로도 그렇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산자락에 도로가 대중교통이나 도로가 있는 도시가 별로 없죠.”  (김한근 /  부경근대사료연구소 소장 인터뷰 중)

 

 

이처럼 부산의 독특한 사회·지리적 경관에서 만들어진 산복도로를 끼고 있는 산동네는 일제강점기부터 근근한 생활의 터전이었으며, 이러한 점때문에 산복도로가 단순한 물리적 경관을 넘어, 역사적, 지역적, 생활사적 가치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이 현재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산복도로를 둘러싼 기억, 경관, 문화의 재구성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산허리를 잇는 도로가 왜 필요해졌을까

해방이후 귀환동포가 부산으로 밀려들자 이들을 위한 수용소를 조성하면서 형성된 ‘귀환동포마을’, 이중섭과 그의 아내 마사코도 이곳에서 판잣집을 얻어 생활했다고 합니다. 

 

 

 

‘분지 안쪽 끝’이라는 뜻을 가진 ‘안창마을’은 사람이 살지 않던 오지였으나,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으로 인해 거주가 시작되었고 7, 80년대 태화고무와 삼화고무 노동자들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살기 전에는 산림이 우거지고 커다란 바위와 물이 많아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였다고 해요.

 

 

 

“어른들 얘기를 들어보면은 여기가 이제 공동묘지인데 일본 기마병들 막 말 막사를 지으려고 조성을 하다가 해방이 되는 바람에 들어가고 여기 그냥 그대로 황무지로 있었어요. 막 무덤 같은 걸 파헤쳐 가지고 웅덩이가 있었고, 돌도 나와있으면 거기 뭐 그때 놀이가 있습니까? 뭐 거기 가서 뭐 밤에 막 놀고 이랬는데, 여기는 뭐 뭐 집이 저 건너 두 채 있었고, 밑에 한 두 채 있었고 여기 있는 것 밖에 없었으니까….그러자 이제 이 귀환동포 들어온다 그래가지고 수용할 데가 없으니까, 이걸 이제 공동묘지를 평지를 이제 조성을 해가지고 여기다가 이제 미군들이 텐트를 치는데, 그 텐트가 아주 컸어요 그 텐트 밑에 8세대씩 살았다고. 세월이 흘러가 가지고 뭐 쉽게 말하면은 6.25사변 나고 부터 이 산이 전부 다 뭐 하꼬방집이 들어서고 이랬지. 귀환동포 왔을 때는 여기 이 수용소 외에는 별로 사람이 형성 되지 않았습니다. 6.25사변 딱 나고는 하루 아침 하룻밤 자고나면은 저 산에 막 집이 몇 개씩 우후죽순 모양으로 생겼으니까, 어떻다고 몇 명이라는 얘기를 할 수가 없는 거죠. 저 미군 부대에서 그 당시에 레이선? 박스가 나왔어요. 이런 박스가 나왔는데 이제 박스 사이에다가 골탄을 칠해 가지고 그 습기 방지하기 위해서 했는데, 그거를 비가 와도 물이 안 샙니다. 그래가 뭐 만들어 놓아 놓고 루빙 덮어 가지고 뭐,  살고, 살고한 게 그래서 안창마을이 생긴 겁니다.” ( 조진시/ 마을주민 인터뷰 중)

 

 

 

그러니까 부산에서의 산복도로 개설은 단순히 산자락에 살고 있는 피란민 거주자들의 어떤 교통편이 뿐만 아니라 당시에 이제 환경이나 위생 문제들 그리고 화재가 났을 때 소위 소방차가 갈 수 있는 이런 접근 문제, 이런 것들이 모든 것이 포함된 어떤 면에서는 부산의 도시계획의 일환으로서는 아주 중대한 결단 중에 하나였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거죠.” (김한근 /  부경근대사료연구소 소장 인터뷰 중)

 

 

 

“산복도로 길이 안 좋아서 돌로 길을 만들어 놨더라고. 여기 밑에 여기 길이 하나 있는데, 오른쪽에는 내려가면 절이 조그마한 게 슬레이트로 집이 있고, 도랑만 커다랗게 있더라고. 그래서 잘못 와가지고 옛날에 다니다가 떨어져서 죽은 사람도 있어요. 완전히 하꼬방으로 루삥집 2층도 없고, 그냥 조그만 대문 하나에다가 밑에 방은 그래도 세 개 더라고. 그래 갖고 비가 너무 막 그때 한여름에 왔는데, 비가 너무 오니까 그게 무너져버려요. 흙집이니까….” ( 현덕순 / 마을주민 인터뷰 중)

 

 

대한민국 신발산업의 중심지, 부산진구

고무신을 처음 생산한 곳이 이곳 범천동에 있던 ‘삼화고무’ 였습니다. 

삼화고무 고무신을 시작으로 부산에 하나둘 신발공장이 들어섰고, 그 산업을 이끈 주역이 바로 판잣집에 살던 실향민, 피난민들이었습니다. 

 

 

 

살기 위해 하루에도 몇번씩 가파른 경사길과 계단을 오르내리며 일과 삶을 병행했던 피란민들. 

격변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애환이 고갯길을 따라 오르내리는 듯합니다. 

 

“번개시장 된 거는 한 팔십 년대 칠십 년대 후반부터 됐었고, 저희들이 국수집할 적에는 굉장히 다 살기 어려울 적에 저녁 때 쯤 되면은 국수 사러 줄을 섰었습니다. 아침에 일찍 상인들이 나오셔가지고 다라이 놓고 생선 놓고 팔고과일도 팔고 뭐도 팔고 막 이런 식으로 했었습니다. 그 당시에만 해도 신발 공장이 이렇게 큰 것도 있는 동시에 중간중간 가내공업이 많이 있었습니다. 큰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점심 시간 되면은 식사하고 옷구경 오고 뭐 살라고 반찬이 라던가 부식 시간 있을 때 살라고 점심 시간 때 나와서 하는 장사도 상당히 숱하게 잘 됐던 그런 기억이 납니다. 성북 고개 버스를 타고 성북시장 내리면 길이 빡빡합니다. 그 딱, 아, 오늘 차가 방금 차가 내리는 가 보다 하면서 차가 내리면 전부 다 시장통으로 오면은 많이 보는데, 하여간 성북고개는 학생들이라든가 정말 많았습니다.”  (이영애 / 마을주민 인터뷰 중)

 

 

 

‘부산의 산복도로’를 미래유산으로 보존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러니까 이 산복도로가 왜 생겼느냐는 결론은 피란수도 부산, 그로 인한 피난민들로 인해서 이분들의 주거안정 때문에 교통편의 때문에 생겼다는 측면에서 부산의 역사와 맥락을 잇는 곳이기 때문에 산복도로가 부산의 미래유산으로서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산복도로를 통해서 한국전쟁 피난 수도를 기억할 수 있고, 도시가 외곽으로 개발되는 이러한 과정 선상에서 출발점이 산복도로였다는 이런 의미들을 같이 볼 수 있으니까요. 어떤 도시에서의 장소의 기억이라는 것은 그 도시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자산이라고 봐지거든요. 그래서 귀환 동포들이 살았던 시기에 그 마을이라든지, 피란민들이 와서 애환을 가졌던 거라든지 관련된 기록들을 보존하고 관리 하는 이런 게 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한근 /  부경근대사료연구소 소장 인터뷰 중)


“나는 여기 못 떠나….”

고단했지만, 그 시간들은 산동네와 산동네를 잇는 산복도로로 이어져  계단과 골목, 그리고 수많은 길 속에 아직도 숨쉬고 있습니다. 

짧지만 길었던 어제와 여전히 삶이 이어지고 있는 오늘, 부산의 고유한 서민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산복도로, 

그 곳에 켜켜이 남아있는 소중한 삶의 이야기들을 들려주신 어르신들의 바람은 이 장소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여기 못 떠나 이웃이 다 좋아 가지고 너무 좋은거라. 지금은 이제 그때는 고생한다고 모르고 살았고, 오로지 이제 뭐 고무공장에 돈 버는 재미로 다녔고, 또 오래 살다 보니까 주위에 오래 산 사람 많아. 아직까지 나는 안 떠나고 싶어. 딴 데 가면 어째 사나 싶고….”  ( 현덕순 / 마을주민 인터뷰 중)

 

 

“여기서 나는 생을 마감 할라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내가 조모님 밑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 유지나 그 정성들을 생각해서라도, 나는 여기를 못 떠납니다. 거의 얘기를 하자면은 여기서 같이 자라고, 같이 살던 사람들도 외지에 나간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찾아와도 내가 여기 오래 있으니까 나한테 물어보고 찾습니다. 그러니까 거의 뭐 백과사전이나 한 가지죠.” ( 조진시 / 마을주민 인터뷰 중)




 

 [참고자료] 

  • 101가지 부산을 사랑하는 법(김수우, 이승헌, 송교성, 이정임, 2020, 호밀밭 출판사) 
  • 산복도로 이바구(손민수, 2017, 인디페이퍼)
  •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부산동구 좌천동의 역사와 문화(2019, 부산포)
  • 산복도로 오딧세이아(엄경근, 2021, 하마터면 독립출판)
  • 주민이 찾은 우리 마을 역사 ‘부산을 품은 동구이야기’ (부산동구민간협의회 엮음, 2016, 미디토리)
  • 2020 부산 미래유산 조사연구 제1차 심화연구 자료집(부산광역시,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참고자료 제공] 

(도움주신분: 김한근 소장, 부경근대사료연구소)

  • 부산시정 1968-1973
  • 사람이 희망이 되고, 희망이 역사가 된 ‘산복도로 이야기’ - 중구 산복도로 주민 생활・생애사 기록 및 구술채록(김한근, 홍성권 엮음, 산리협동조합, 2014) 
  • 1934년+2022년 부산 원도심 일대 지도
  • 2022년 부산 원도심 일대 지도_산복도로 부분

 

*이 프로젝트는 2023년도 부산광역시 비영리민간단체 공익활동 지원사업」으로 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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