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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4월 초록영화제]세월호 다큐멘터리 <망각과 기억2: 돌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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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토리 2017. 5. 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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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4월 초록영화제]  세월호 다큐멘터리   <망각과 기억2: 돌아 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3년째인 2017년 4월,

뒤늦게 인양된 세월호는 참혹한 모습을 담고 있어 우리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합니다.

모두에게 슬프고 아픈 기억 "세월호 참사"를 여러분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아직도 그 슬픔과 아픔이 계속 되고 있지 않나요?

지금도 세월호 가족들은 진실규명과 미수습자를 기다리며 고통의 시간속에서 진행형으로 살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망각과 기억2 : 돌아봄>은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세월호해결을 위한 어떤 과제를 안고 살아가는지

각기 다른 인물의 시선으로 세월호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옴니버스 형식의 다큐입니다.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가 두번째로 제작한 영화이고, 6명의 감독이 연출한 6개의 단편 다큐멘터리가 담겨있습니다.


 2017년 4월 초록영화제에서 세월호의 아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 모여 영화를 보고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 작품소개 : 416연대 미디어위원회의 다큐멘터리 프로젝트 텀블벅 작품 해설 참조


1. <승선>_안창규
세월호 참사 3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생존자인 성묵은 참사 현장인 동거차도를 향한 배에 승선한다. 그는 세월호 참사의 끔찍한 기억을 이겨내고 생존자로서의 새로운 싸움을 시작할 수 있을까? 세월호 참사 이후 생존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세월호 참사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2. <오늘은, 여기까지>_박수현
수학여행을 간 사랑하는 동생이 떠나고, 유가족이라는 이름이 돌아왔다. 세월호 참사에서 동생을 잃었다는 사실을 온전히 인지하기도 전에 더 많은 폭력이 밀려들었지만, “네가 정신 차려야지”, “네가 버텨야 부모님이 잘 하실 수 있지”라는 주변의 말들에 함부로 울 수도 없었던. 숨 쉬는 것만으로도 용기가 필요했던 낯선 하루들. 모든 날이 4월 16일이었던 그 매일이 모여 오늘도, 4월 16일. 형제자매들 중 가장 많은 활동을 했던 서현, 보나, 윤아의 목소리로 오늘의 이야기를 듣다


" 잔인한 모습을 봅니다."

" 야유에서 이제 응원으로 바껴 적응 안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지만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아서 왜 이제야 그랬나하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 아이들 생일이 되면 엄마는 몸의 기억으로 하루종일 운다.아이는 없지만 엄마의 몸은 기억하고 있다"

" 개그하고 웃지않으면 내가 죽을 것 같아서 일부러 내 모습이 아니라도 웃는다.그러면 내가 안 힘든줄 안다 사람들은.."

" 울산에서 진상규명을 위한 서명을 받는데 사람들의 차가운 말들도 힘들었지만, 가장 힘든 건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놀러가는 제 또래 아이들의 모습이었어요. 나도 주말에 친구들과 저렇게 놀고 싶은데 여기에서 지금 뭘하고 있는거지"


3. <잠수사>_박종필
“뒷일을 부탁합니다.” 2016년 6월 17일, 민간잠수사 김관홍은 이 말을 남긴 채 생을 마감했습니다.정부를 대신해 희생자의 시신수습을 했던 민간잠수사들. 하지만 정부와 해경의 태도는 거짓과 배신의 연속이었습니다. 시신수습 작업을 제대로 지원하기는커녕 언론플레이만 집중하며 민간잠수사들을 더욱 위험한 상황으로 내몰았습니다. 김관홍은 민간잠수사들의 명예회복과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여러가지 활동에 매진하였습니다. 비록 김관홍잠수사는 가고 없지만 정의와 진실을 향한 그의 모습은 우리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김관홍 잠수사는 말한다. 

"대한민국이라는 착각속에서 살고 있었구나" "국가권력은 뭐 하셨는지?"

가족들이 감사하다고 말하면 잠수사는 말한다. 

"우리가 일찍와서 살아있는 아이들을 데려와야하는데 죽은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데 뭐가 고맙습니까?" 

하지만 가족들은 "당신들이 우리아이들의 마지막 희망입니다 " 란 플랭카드로 감사함을 표현한다.

11명 미수습가 있는 상황에서도 민간잠수사들은 7월 10일 쫓겨난다. 감사장을 준 것은 뭐지... 해경은 잘못을 민간 잠수사들에게 덮어씌우며 업무상과실치사로 고발한다.

김관홍 잠수사는 말한다.

 "1일 1회 잠수가능한데 3-5회 한 이유는 시신을 발견했는데 다음 잠수사가 못 찾으면 우리는 가족분들한테 빨리 찾아주고 싶은 것 뿐"

"그 순간을 삭제하고 싶어서, 약을 먹어도 안되고, 술을 먹어도 안되고, 변해가는 내 모습에 지인들은 떠나고..."

"한가닥 희망을 붙들 듯 선거운동을 하였다.선거운동을 하루종일 하다보니 너무 피곤해서 그 이후 처음으로 잘 잘수 있게 되었다. "

기억교실에 올라가서 아이들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트라우마로 인해 자기제어가 안되는 상태로 자기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할까봐 두려워, 몸으로 놀아주는 것을 가장 잘해주던 아빠는 아이들을 멀리하게 되었다.


4. <세월오적五賊>_김환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참사 이후 우리는 계속되는 거짓과 마주했다. 구하지 않은 정황, 잠수사 투입과 공기 주입에 대한 거짓말, 지지부진한 인양 문제와 정부의 은폐지시까지... 세 차례에 걸친 청문회와 유가족들의 진상규명 노력을 통해 세월호 오적(五賊)이라 불릴만한 책임자들의 거짓된 민낯이 드러난다.

304명의 죽음을 생중계로 온 국민이 보고 있었다

해야 할 일을 안해서 문제가 되었다. 단연코  살인이다.

왜? 안 구했을까? 참사의 본질은 구해야하는 안 구했다.  진상규명은 왜 안구했을까를 밝혀내는 것이다.

구하지 말라는 모종의 명령이 있었던지, 죽을까봐 겁이 나서 못들어갔다. 두개의 이유밖에 없다. 뭔지 이유를 밝혀라.

우리는 세월오적이라 칭한다.

1) 대통령 졸개들

2) 정부-해경 해수부

3) 국정원

4) 언론

5) 국회


5. <걸음을 멈추고>_김태일

류성국씨는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이면 토요일마다 마로니에 공원을 찾는다. 연극배우들이 주축이 되어 3년째 진행하고 있는 마로니에 촛불 문화제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정치엔 도통 관심이 없던 그가 이 자리에 오게 된 건 세월호 참사가 그에게도 큰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배우로 살아가는 것만 생각하고, 정치에 관심이 없었기에 나름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왔다는 성국 씨는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는 중이다. 한편 유가족 수인이 어머니는 결혼 후 10년 만에 얻은 아들이 세월호 참사로 가족 곁을 떠나게 된 것을 아직도 믿고 싶지 않다. 내 아이와 가족의 행복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으나 아이의 죽음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유가족 어머니들과 연극무대에 함께 서면서 비로소 세상을 향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배우로 무대에 서있던 성국 씨.
유가족으로 무대에 서게 된 수인 어머니.
이 촛불을 우리 스스로 끌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며 잠시 걸음을 멈추어 본다.


마로니에에 선 예술가들 "우리가 사람인걸 증명하는거 아니겠습니까?"

416가족극단 노란 리본, 연극 무대에 선 엄마들 

"아무리 진상규명되고 밝혀진다고 해도 우리 아이는 안 온다는 걸 아니깐" 

"천일이든 만일이 지나더라도, 이 괴로운 시간이 꿈이라면 단 하루만이라도 꿈속에서 깨어날 수 있다면" 

옆에서 아이들을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엄마들은 연극무대에서라도 아들역을 하는 상대 배우의 엄마를 열심히 쓰다듬는다. 내 아들에게 하고 싶은 손길, 말을 내어본다. "아들을 만져보고 싶어요. 연극에서 만져요."

"연극적웃음을 통해서 웃음을 뽑아낼 수 있다면..연극을 하면서 치유가 되요"

" 어디가서 우리 애들 얘기 못하니깐 대본대로 안하고 우리 애들 얘기하는 거에요"

평범한 일상이 사라져버렸다. 매순간 416로 돌아가있는 어머님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는 예술인들


6. <기억의 손길>_문성준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그리고 안산 합동분향소 엄마공방에서, 무엇인가를 만들며 스스로 치유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엇인가를 만드는 활동을 함으로써 세월호를 기억하자는 약속을 실천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받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분들과 안산시민들은 협의회를 만들어 추모공간을 위한 논의를 이어오고 있다. 기존의 혐오시설로 인식되는 추모시설을 새로운 생각과 공간배치로 주변 친화적인 시설들로 꾸미려는 생각들을 하고 있다. 기억의 공간이 될 장소의 후보로 부모님들은 화랑유원지를 선택해서 진행 중이다.
많은 안산시민들이 이에 찬성하지만, 화랑유원지에 인접한 지역주민의 반대가 우려되기도 하다. 아직 표면에 드러나진 않았지만 앞으로 돌출될 가능성이 높다. 기존의 혐오시설로 인식되는 추모시설과 다르게 새로운 개념과 디자인 등으로 주민 친화적으로 만들어지는 추모공간을 기대할 수 있을까.


엄마의 공방 "아이들이 살아오는 것 말고는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일이 없다. 그렇다면 진실을 규명하는 일 밖에 없다.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추모공원 조성 "기억한다. 사람의목숨을...  아픈사람을 보듬고.. 사람이 우선이어야 한다."

그런데...추모공원이 조성되는 부지의 주민들은 반대한다. 자신들의 사유재산 보호가 우선이라고..

" 416 세월호 추모공원은 교육장소여야 해요.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한."

" 당신 자식이 또 이런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위해 내가 이런 수모를 겪어야하나?"




<영화를 함께 본 관객들이 나눈 후기>


3년 전 세월호가 일어나던 그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지금의 나는 무엇을 함께 하며 살고 있는가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 세월호 참사 당일에 공부를 하고 있었던 학생입니다. 단원고 학생들과 같은 나이입니다. 내가 투표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세월호 아이들은 아직 고등학생이네요.

  • 작년에 나쁜나라를 봤는데 그 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것 같다.

  • 세월호 당일에 군대에 가서 티비를 보고 있는데, 집에 무슨 일이 났는지 전화를 하라고 하더라구요.

  • 세월호 관련한 영상이나 소식을 일부러 피할려고 한다. 혼자 있을 때보면 너무 마음이 아픈데 같이 볼 수 있는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 초록영화제에서 3년 동안 세월호를 같이 기억해볼 수 있었다. 그 동안 나눈 작은 마음들이 모여 촛불의 힘도 보여주지 않았을까? 그날은 논문을 쓰고 있었다. 전원구조라는 소식에 안심하고 있었는데, 오보라는 소식에 하루하루 힘들게 희망을 가졌던 것 같다.

  • 밥먹으러 가서 뉴스를 보며 사람들이 죽어가는 걸 티비로 지켜보기만 한 것이 고통스러웠다. 잠수사의 생전 영상을 보니 울컥울컥한 마음이 든다. 카페 사장님이 세월호 팔찌를 하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나도 이거라도 해야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 세월호 당일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기억이 안난다. 그래서 더 기억해보려하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게 충격적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부산에 와서 세월호를 더 가깝게 느끼고 있다. 세월호 리본을 받았는데 아직 달아야겠다는 용기가 안 날 정도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심각했던 거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 가방에 달려있던 세월호 리본이 장식이었던 것 같다. 불편한 감정이 들어서 넘어가고 싶어 관심을 덜 가졌다. 마음을 더 담아야겠다고 예술인들이 말한 것 처럼, 마음이 무거울 수 있으나 불편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세월호를 기억하는 것이다란 생각이 든다. 오늘 영화를 보면서 좋았던 것은 뉴스에서 보여주는 것만 보다가 그 뒤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아서 좋았다. 그냥 사건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중요한 역사이고 계속되는 이야기란 생각에 나도 같은 선상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 뉴스로 전원구조라는 소식을 듣고 ...열심히 찾아봤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초록영화제에서 몇 년 동안 계속 이렇게 기획해서 보게 되고...나만 잊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니 아직까지 계속 많은 일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거기에 어떻게 힘을 모아야하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특히 마지막 영화 추모공원조성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서 세월호는 계속되는 거란걸 알 수 있었다.

  • 세월호 희생자라고 하면 학생들만 떠올랐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자로 살아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잠수사” 이야기, 유가족하면 부모님만 떠올랐는데 형제-자매 이야기와 파생된 이야기들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이 희생자란 것을 알수 있었다. 단편들의 모음이라...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비겁하다는 생각도 든다. 세월호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것에 죄의식이 느껴진다.

  • 너무 많이 몰랐어요. “형제자매 이야기 중 울산번화가에서 서명을 받을 때 내가 왜 여기 서있는지 모르겠고, 다른 약속장소로 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저러고 싶다는 얘기”를 보면서 많이 울었어요. 철없지만 솔직한 감정의 이야기들에 울었어요. 이번 대선의 결과에 따라 세월호 문제도 달라 지겠죠.

  • 마지막 작품에서 "기억을 한다는게 추모다."라는 말과 시민들이 토론을 통해서 추모공원을 함께 고민하는 모습이 인상에 남는다. 어떻게 기억을 할 것인지 어떻게 추모를 할 것인지 시민들의 의견을 모으는 것이 좋았다. 김관홍잠수사 이야기에서도 "내 가족의 일이 아니지만 내가 아파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라는게 와 닿았다. "이게 내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게 더 이상하다. 나는 더불어 살아가는게 당연하다고 알고 왔는데 왜 그 일이 못하게 하냐" 는 잠수사의 육성이 감동적이었다.

  • '세월호는 교통사고와 같다.' '유가족이 보상을 얼마를 받았다'라는 오해에 대해 우리는 무엇이라고 답변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도 추모의 한 방법이다. 안 구한 것이 살인이다. 잠수사들도 시체를 200구이상 보고 정신이 아픈 게 된 것이 이해가 된다. 우리 나라는 이 전 정권에서도 저런 일이 많았다. 이런 일들이 한번 씩 일어날 때마다 정의나 정당성을 찾기보다는 잃어버린 사람들을 돈으로 배상하고 끝냈다. 상식이 안통하는 방법으로 처리해왔다. 지금은 세상이 많이 변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밝히는 것이 중요한데, 유가족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이해못하는 어른들을 보면 깝깝하다. 그런 상황이 잠수사의 경우처럼 죽음으로 몰고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게 되는 거 아닌가 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안 일어나야 할 텐데..

  • 세월호 세대(96년생) : 학교안에서 추모팔찌를 사자고 했는데 반대로 무산되고, 수학여행을 안 간다는 얘기도 있었는데.그 외에도 이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난 듯 하다. 이 영화를 보고 뉴스 언론에 대해서도 신뢰성을 잃는 계기가 되었다.

  • 세월호 사건을 통해서 미디어가 보여주는 것만 믿지 않게 된 계기, 성수대교 사건만 해도 국민들은 정부가 보여주고 싶은 것 그것을 받아적는 언론의 얘기만 알게 되었다.

  • 세월호 청문회에서 거짓말이 명백한데 왜 저런 식으로 얘기하지. “저렇게 기록이 있으니 인정하지만, 기억이 안난다.” 잘못을 했지만 책임은 안지는 걸 보면 우리 사회가 신뢰가 무너지는 것 아닌가. 납득할 만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붕괴하는 사회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잠수사와 토론하는 시민들처럼 함께 하는 이들이 있어서 버틴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뭐가 달라질까?하는 생각도 든다. 추모공원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제대로 된 사회가 될까?  추모공원을 만드는 자리에 와서도 땅값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사회의 추악한 민낯을 본 듯 하다. 서명전에서 한마디 하는 사람들보다 저런 사람들이 더 잔인하게 느껴진다.

  • 국가가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것이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세월호를 감성팔이한다고 몰아붙이는 것은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수 있다는 희망이 없는 사람들의 생각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믿을게 돈밖에 없다는 것 아닐까?

  • 포스터를 제작하는 곳의 사장님도 교통사고라고 치부시더라. '7시간을 밝히라는 것을 그러면 김대중은 625때 뭐했는지 밝혀야 되지 않냐?' 어떤 것을 알아보고 사유를 하는 행위를 안하는 것, 단편적인 것 만으로 현상을 판단하려는 반지성주의의 분위기, 본질이 뭔지 알아보지 않으려는 태도에서 잔인함이 묻어난다.

  • 추모공원건립 토론회에 쳐들어와서 땅 값 얘기하는 사람들을 보고, 부산의 만덕과 경산코발트 광산 학살지 등이 떠오른다. 예산이 없다고 돈 얘기로 수습도 안한다. 자기 이해관계가 없을 때 대학이라는 공간에서조차 혐오시설이라고 쉬쉬하는 걸 보며 안타까웠다. 무심코 내뱉는 말들이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 재난을 겪고 일상이 파탄 난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 그나마 돈으로 하는 보상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보장이라는 말이 빠져있다. 살던 공동체를 그대로 살려주는 보장이라는 개념이 없다. 돈이면 다 된다. 그러면 너희들의 일상이 다 회복된다. 라는 것이 서글프다. 이들은 괴로움을 알리고자 한다. 하지만 서면만 보더라도 다른 골목의 소리가 안들리게 디자인 되어 있다. 그들의 말 들이 퍼질 수 있도록 건물들이 없어졌으면 하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더 이상 억울한 사람들이 고립된 느낌이 들지 않도록 열린 곳이 필요하다.

  • 학생들 외에 첫 희생자에게도 관심을 가져야한다. ’탕탕 소리를 듣고 난 이후의 첫 희생자’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관심을 가지고 세월호를 같이 따라가 보았다. 세월호의 진실을 따라가다보니 정신병이 걸릴 정도로 충격적인 많은 사건경위를 보게 되었다

  • 2년 전 팽목항에서 본“ 나의 딸로.와줘서 고맙다”란 글귀가 떠오른다.

  • “만져보고 싶어요”가 너무 가슴 시리게 와 닿는 어머니의 말씀이다.

  • “구명조끼가 모자라서 친구를 줬어요” - 아직까지 때묻지 않은 학생들의 순수함을 죽이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텐데..

  • 연극을 통해서라도 만져보고 싶어하는 어머니, 아들의 역을 하는 어머니 다들 힘들었을 것 같다.

  • 일하느라 마지막으로 보낸 딸의 메세지에 답을 하지 못했다는 어머니의 얘기를 들으면서 가장 가슴이 아팠다.

  • "악다구니 지른다고 애들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돈이나 받고 치우라는 얘기" 를 잔인한 이들은 세월호에도 밀양에도 한다.


세월호는 우리 모두에게 상처이며, 아직도 풀어야 할 과제를 가지고 있다. 

계속 진행 중이다.

직간접적으로 상처를 입은 피해자들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은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사람이라면...  더 이상 상처입은 이들을 벼랑끝으로 몰지 않고 공감하는 따뜻한 말한마디를 나눌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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