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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옥빛이었다

미디토리 스토리/언론이 본 미디토리

by 미디토리 2013. 6. 3.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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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독자님께서 <종이배를 접는 시간> 고마운 리뷰를 적어주셨습니다. 편집할 때 유념해뒀던 부분들을 어찌나 콕콕 잘 알아채셨는지, 우리의 문법보다 훨씬 뛰어넘는 이야기들을 해주셨습니다. 그 전문을 공개합니다.


ⓒ임소영

눈물은 옥빛이었다

<종이배를 접는 시간>을 읽으며

 

부산대학교 신문사 정승훈 간사

(부대신문 14642013.5.27.)

 

201116, 김진숙은 85크레인에 올랐다. 8년 전 노조지회장 김주익이 목을 맸던 그 자리였다. 경영이 어려우니 해고를 하겠다. 세월이 무색하게 회사의 레퍼토리는 한결같았다. 이번엔 4백 명, 전체 노동자 3분의 1에 달했다. 해고 계획안을 통보한 다음 날, 회사는 주주들과 배당금 잔치를 벌였다. 마구잡이로 해고통보서가 발송됐고, 노동자와 그 식구들은 힘겹게 맞섰다. 회사는 가진 게 많아 사원아파트를 쥐고 노조 탈퇴를 부추겼고, 용역업체와 경찰과 법원을 끌어들였다. ‘합법공권의 이름으로 노동자들의 목줄이 죄이던 그 때, ‘희망버스가 다다랐다. 당황한 회사는 갖은 수단을 동원했다. 경찰과 용역은 더 거칠어졌고, 디케는 천칭을 놓아버렸다. ‘노조 없는 세상을 만들자던 회장은 마침내 국정감사에 출석했고, 간신히 노사합의서가 발표됐다. 해고자 94명의 1년 내 재취업이 합의됐고, 김진숙은 크레인에서 내려왔다. 309일만이었다. 여기가 끝이어야 했거만 1년 후, 회사는 다시 술수를 부렸다. 합의된 재취업자들을 출근 세 시간 만에 무기한 휴직 통보하고 쫓아버렸다. 이에 젊으나 한 많은 노동자가 또 목을 맸다. <종이배를 접는 시간>은 이 3년에 대한 기록이다.

 

책은 옥빛이다. 표지색이 그렇고 속지에 들어간 유일한 색도 옥빛이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작업복에서 가져왔을 이 빛깔은 조선소가 있는 영도 바닷가를 연상시키고 그러므로 배 만드는 노동자들의 눈물을 떠올리게 한다. 아니나 다를까. 날개지에 박힌 짧은 저자들 소개에도 눈물이 넘치고, 프롤로그부터 에필로그까지 이 물기는 마르지 않는다. 결정적 전환점인 희망버스를 기획한 송경동의 별명도 울보 시인인데, 크레인에서 내려온 후 김진숙이 가장 고마운 사람으로 그를 호명하며 또 운다. 모든 주어와 술어가 그렇게 다 운다. 젊으나 한 많았던 동료의 영정을 뒤로 추도사를 읽다가 엉엉 울고 마는 김진숙의 사진은 이 책에서 가장 뼈아픈 눈물이다. 명석한 판단과 거창한 대안은 이 눈물 앞에서 해체된다. ‘작업복에 비쳐 옥빛으로 빛나는 눈물. 이 눈물은 약속이다란 초입의 문장과 물방울처럼 모여 강물처럼이란 말미의 구절은 그렇게 순정한 수미상관을 이룬다.

 

그러니 <종이배를 접는 시간>에 등장하는 노동자와 그 식구, 희망버스 참가자, 그리고 저자들을 포함하여 이 책을 둘러싼 인물들은 하나같이 눈물 흘리는 인간이다. 이 눈물 흘리는 인간들은 그저 사력을 다해 운다. 부도덕한 세계 앞에서 한없이 절망하며 흘리는 눈물은 또한 한없이 무력하며 연약하다. 그러나 통치자들의 척도들을 부수고 깨고 찢는 김진숙의 힘은 전지적 연약이라는 역설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윤인로의 지적(‘파루시아의 역사 유물론-크레인 위의 삶을 위하여’)처럼 이 울음은 힘이 세다. 가진 것 없는 노동자들은 희망버스를 타고 오는 이들에게 주려고, 배 만들던 그 거칠고 무딘 손으로 종이배를 접어 건넸다. 이것은 눈물 흘리는 피눈물이고 피울음 아니었던가. 그 핏빛을 옥빛 아래 내려놓음으로 먹먹한 서정과 아름다운 연대를 이룩했다. 그러므로 울음이라는 절망의 형식은 결국 연대의 언어였고 희망의 호출이었다. 눈물 흘리는 인간만이 기어이 우리희망을 말할 자격이 있을 것이다. 무력한 당신께, 눈물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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