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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배를 접는 시간> 서울 북콘서트 다녀와

미디토리 스토리

by 미디토리 2013. 5. 15.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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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배를 접는 시간> 첫번째 독자 만남을 가졌습니다. 지난 5월 10일 서울 홍대 가톨릭청년회관에서 북콘서트를 열었는데요, 출판사 분들의 세심한 준비와 윤석정 시인의 열정적인 연출, 그리고 독자 여러분들의 관심으로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습니다. 영도에서 올라온 한진중공업 노동자분들도 마음 깊숙히 고마움을 안고 돌아가셨는데요, 이 마음 많은 분들과 나누기 위해 6월 초에 부산에서도 한차례 북콘서트를 진행할까 합니다. 그때까지 땡실하게 준비해 3년간의 이야기를 한 마음으로 잇는 시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지난 서울북콘서트 사진들을 보실까요.



입구 앞 매대를 꾸린 출판사 삶창 식구들. <종이배를 접는 시간>을 잘 다듬고 멋지게 만들어주신 분들입니다. 종이배를 접으며 관객들을 기다렸습니다. 왼쪽부터 윤선미 편집자님, 김은경 총무님, 김영숙 편집장님, 노윤영 편집자님. 그리고 맨 오른쪽 저자 박지선님.



백기완 선생님도 오셨습니다. 희망버스 때 촛불을 선두에 계셨던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북콘서튼 책의 내용에 따라 1부, 2부, 3부로 나뉘어 진행됐습니다. 1부는 <85크레인>, 2부는 <희망버스>, 3부는 <유예의 시간>이 주제였습니다. 이지상 사회자께서 '지친 날개를 접고'를 부르시는 동안 관객들은 종이배를 접어 무대 위로 올려보냈습니다.



1부 <85크레인>은 오도엽 작가의 낭독으로 시작됐습니다.


18p

201116일. 바로 그날이다. 우리 모두가 두려워했던 그 순간. 새벽 310. 굳게 닫혔던 문이 열린다. 이윽고 숨죽인 발자국 소리가 텅 빈 크레인을 깨운다. 사방은 칠흑같이 어둡다. 작은 손전등 불빛이 안을 비춘다. 직각의 계단이 드러난다. 한 발 한 발 녹슨 계단에 발을 올린다. 그만큼 지상과 멀어져 간다. 두려워할 틈도 없다. 동트기 전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마지막 난간에 손을 뻗었을 때 뒷골이 서늘했다. 2003년 그날, 바로 그곳이다. 김주익의 모습이 김진숙의 머릿속을 스쳐갔다. 크레인에 오른 그날부터 김진숙은 129일을 헤아리기 시작한다.

(사이)

김진숙은 1982년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용접공으로 대한조선공사(지금의 한진중공업)에 입사했다. 스물한 살이었다. 돈 벌어서 대학 가는 게 소원이었다던 그의 눈앞에 펼쳐진 당시 조선소의 삶은 무척이나 비참했다. 머리가 깨져 바닥에 라면 면발 같은 뇌수가 흩어졌고, 용접 슬래그에 뺨이 움푹 파였다. 눈알에 용접불똥이 튀는 건 예사였다. 소원이 뭐냐고 물으면 1초도 안 돼 안 죽고 일하는 게 소원이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곳이었다. 5년만 바짝 일하면 집도 사고 차도 사고 금의환향하리라 믿었던 김진숙은 쉰둘의 새해를 크레인 위에서 맞았다. 새벽 겨울바람이 거세 걷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침낭과 전기장판, 생수 한 통을 넣은 배낭을 어깨에서 내려놓은 뒤 간신히 난간을 잡고 동이 트길 기다렸다. 누구라도 봐주길 간절히 바라며.



배우 황석정 씨가 김진숙 지도위원의 독백을 읽으셨는데요, 관객들 모두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습니다.


24p

지난해(2010) 226. 구조조정을 중단하기로 합의한 이후 한진에선 3,0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잘렸고, 설계실이 폐쇄됐고, 울산공장이 폐쇄됐고, 다대포도 곧 그럴 것이고, 300명이 넘는 노동자가 강제휴직당했습니다. 명퇴 압박에 시달리던 박범수, 손규열 두 분이 같은 사인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400명을 또 자르겠답니다. 하청가지 1,000명이 넘게 잘리겠지요. 흑자기업 한진중공업에서 채 1년도 안 된 시간 동안 일어난 일입니다. 그 파리 목숨들을 안주 삼아 회장님과 아드님은 배당금 176억으로 질펀한 잔치를 벌이셨습니다. 정리해고 발표 다음 날, 2003년에도 사측이 노사 합의를 어기는 바람에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 여기 또 한 마리의 파리 목숨이 불나방처럼 크레인 위로 기어오릅니다.


스물한 살에 입사한 이후 한진과 참 질긴 악연을 이어왔습니다. 스물여섯에 해고되고 대공분실 세 번 끌려갔다 오고, 징역 두 번 갔다 오고, 수배생활 5년하고, 부산 시내 경찰서 다 다녀보고, 청춘이 그렇게 흘러가고 쉰두 살이 됐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 생각했는데 가장 큰 고비가 남았네요. 평범치 못한 삶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결단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만 이번 결단을 앞두고 가장 많이 번민했습니다. 85호 크레인의 의미를 알기에…….


지난 1, 앉아도 바늘방석이었고 누워도 가시이불이었습니다.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 앉아야 했던 불면의 밤들. 이게 조합원들이 잘려나가는 거 눈 뜨고 볼 수만은 없는 거 아닙니까. 우리 조합원들의 운명이 뻔한데 앉아서 당할 순 없는 거 아닙니까.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정면으로 붙어야 하는 싸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한진 조합원들이 없으면 살 이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걸 다 해서 우리 조합원들을 지킬 겁니다. 쌍용차는 옥쇄파업 때문에 분열된 게 아니라 명단이 발표되고 난 이후 산 자, 죽은 자로 갈려져 투쟁이 힘들어진 겁니다.


지난 일요일. 2003년 이후 처음으로 보일러를 켰습니다. 양말을 신고도 발이 시렸는데 바닥이 참 따뜻했습니다. 따뜻한 방바닥을 두고 나서는 일도 이리 막막하고 아까운데 주익 씨는 재규 형은 얼마나 밟히는 것도 많고 아까운 것도 많았을까요. 목이 메게 부르고 또 불러보는 조합원 동지 여러분!



가수 이씬 씨가 <철탑 위에 피는 꽃>을 불러주셨습니다.


저 높은 철탑위에 사람이 산다/ 저 높은 철탑위에 사람이 산다

먹이를 찾아 날아든 비둘기들아하늘 가까운 철탑으로 가라
촛불에 취해 돌아선 패배자들아/ 꿈이 가까운 철탑으로 가라

저 높은 철탑위에 사람이 산다저 높은 철탑위에 사람이 산다

온몸이 깃발 되어 나부끼고 있는/ 시대의 개척자들을 보라

어여쁘다 못해 가녀린 슬픔/ 철탑위 눈물꽃을 보아라
저 높은 철탑위에 사람이 산다저 높은 철탑위에 사람이 산다

온 몸이 깃발되어/ 온 몸이 깃발되어/ 온 몸이 깃발되어

온몸이 깃발되어 나부끼고 있는/ 시대의 개척자들을 보라

어여쁘다 못해 가녀린 슬픔/철탑위 눈물꽃을 보아라
저 높은 철탑위에 우리가 있다/저 높은 철탑위에 우리가 있다




2부 <희망버스>는 심보선 시인의 독백으로 시작했습니다. 


103p

201179일. 무겁던 해무가 걷히기 시작했다. 시원하게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185대의 버스가 전국에서 출발했다. 1차 희망버스의 10배였다. 한 사람의 희망버스 승객이 한 달 만에 열 사람의 손을 잡고 다시 영도를 찾은 거다. 참가자들은 만 명이 넘었다공장에서 쫓겨난 조합원들은 정문 맞은편 신도브래뉴 앞에서 먹고 자며 85호 크레인 앞을 지켰다. 길 건너 조선소 85호 크레인에 남아 있는 조합원들의 모습은 꿈속에서도 아른거렸다.


남아 있는 조합원들은 거칠고 무딘 손으로 작은 종이배를 접기 시작했다. 희망버스를 타고 오는 사람들에게 줄 작은 선물이었다. 시멘트 바닥을 깔고 앉은 엉덩이가 배기고 자꾸 땀이 찼다. 손바닥만 한 종이를 접어 배 모양을 만들고 테이프로 고정시켰다. 철판을 자르고 붙이던 두꺼운 손에서 종이배가 만들어졌다.


조선소 남자들이 제일 잘하는 게 배 만드는 일인데, 비뚤비뚤하게 만들 수도 없고…….”


빨주노초파남보의 종이배가 박스 안에 차곡차곡 쌓여간다. ‘당신을 통해 희망을 봅니다고 쓴 희망엽서도 만들었다.



낭독이 끝나고 허소희 작가와 심보선 시인의 이야기마당이 이어졌습니다. 서울에서 희망버스를 타고 내려온 시인의 여정과 부산에서 연대의 손길을 기다린 작가의 시간이 풀어졌습니다.



3부는 <유예의 시간>입니다. 사실 종이배를 접는 시간의 기록은 2부까지였습니다. 그러나 회사가 2년을 기다린 노동자들은 다시 거리로 내몰면서 절박한 시간은 끊나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진중공업지회 박성호 부지회장이 낭독했습니다.


216p

조합원들은 회사가 발령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입구로 나와 서둘러 담배를 피워 물었다. 흰 연기가 입구에 자욱했다. 3년 전부터 기다림이 일상이 된 날들이다. 파업하며 매일 했던 부루마블 게임판을 다시 폈다. 다행히 게임판은 쉽게 달아올랐다. 주사위를 던지고 움직이는 말 하나에 조합원들이 눈을 떼지 못한다.

 

"참 환장하겠네. 오랜만에 주저앉은 건데 회사가 당황하네.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히 보이네. 여기 단위에서 결정 못하는 게 확실히 보이네. 복직은 될 거야. 그리고 휴직을 시키겠지. 다 휴직시키겠냐. 선별적으로 시키겠지. 대선 정국이고 하니깐 휴업조치 무를 수 있지 않겠나. 대신 오늘 복귀 문제가 정말 중요하지. 기업별 노조에 있는 사람 중에서도 휴업 나가 있는 사람 있거든. 그런 사람들이 동요할 수도 있는 문제이고."

 

길고도 지루한 다툼 끝에 인사발령 공문이 내려왔다. 하지만 인사발령 내용을 본 노동자들은 또다시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동조합 활동으로 전과 기록이 있었던 김병철, 김인수, 윤국성, 이상규, 박성호, 김경춘을 이들이 일해왔던 부서와는 무관한 수익사업팀 현장지원직으로 발령을 낸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조립을 해왔던 이를 탑재부서로, 탑재에서 일하던 이를 조립부서로 발령을 냈다. 부서에서 조장을 해도 기술점수를 낮게 줘 정리해고 시켰던 회사다. 이제는 낯선 부서로 이들을 옮기게 해 스스로 낙오시키려는 의도였을까? 노사 합의서에는 근속과 제반 경력을 인정한 재취업이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인정은커녕 제반 경력을 무시한 신규 채용과 다를 바 없었다.



<종이배를 접는 시간> 첫번째 북콘서트는 그룹 트루베르의 "나는 회사를 증오한다"의 노래로 마무리 지어졌습니다. 2012년 12월 21일 노조사무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최강서 조합원의 유서에 음표를 붙였습니다. 꼭 들어보세요.



오도엽 작가가 말했다. 배는 '만든다'고 말하지 않고 '짓는다'고 한다. 건물을 세우는 것처럼 모든 종류의 인간의 노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종이배를 접는 시간>도 네 명의 작가가 힘을 보태어 한장씩 쌓아 올린 결과물이다. 이제 냇물에 띄웠다. 많은 분들의 손길을 담아 무사히 바다로 흘러가기를 바래본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과 북콘서트에서 활짝 사진을 찍었습니다. <종이배를 접는 시간>은 전국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부산, 창원 북콘서트도 기대해주세요!


글 | 허소희

사진 | 삶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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