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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에서 두번째 종이배를 띄웠습니다

미디토리 스토리

by 미디토리 2013. 6. 28.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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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서울에서 닻을 올린 종이배가 창원에 도착했습니다. 공공미디어 단잠 식구들이 저희를 세차게 맞아주셨는데요. 정말 감사하게도 북콘서트 기획부터 진행까지 발벗고 나서주셨습니다. 그래서 저희 미디토리는 창원에 계신 많은 분들과 <종이배를 접는 시간>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지난 6월 26일 진행됐던 창원 북콘서트 소식을 지금, 전합니다.



[18:00] <종이배를 접는 시간>을 차곡차곡 내려두고 관객분들을 기다립니다. 어떤 분들이 오실까요? 설렙니다. 



게시판 한 편, 깨알같이 김정근 감독의 <버스를 타라> 포스터도 붙였습니다. 창원대학교 학생들이 지나가면서 눈여겨 보더라고요. 공동체 상영을 기대해봅니다^^



와! 드디어 오셨습니다. 금속노조 경남지부 조합원들이 일등으로 도착하셨네요. 



허허허, 간만에 작가놀이 했습니다. 지금 사인을 받고 계신 분은 경남도민일보 기자님이십니다. 



[19:00] 허소희 씨가 작가들을 대표해서 프롤로그를 읽었습니다. 


"이 르포르타주는 약속과 배신 사이에서 삶과 죽음이 교차하며 진행되어온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역사다. 한 노동자는 백 일이 지나도 희망도 동료도 보이지 않아 목을 맸고, 한 노동자는 백 일이 지나자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에서 몰려온 시민들에 힘입어 걸어 내려온 85호 크레인의 기록이기도 하다. 산 자와 죽은 자를 갈아치기 했던 한진중공업, 그곳에 우뚝 선 85호 크레인 위에서 누군가는 죽어서, 누군가는 살아서 내려왔다. 외딴 섬 작은 집과 같았던 크레인 곁에 사람이 끊겼을 때 우리는 85호 크레인을 절망의 상징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곳에 고깔모자를 쓴 우스꽝스러운 희망버스 승객들이 몰려왔을 때 그 외딴 섬 작은 집을 희망으로 불렀다. 옥빛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은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아기를 닮았다. 한 번 한 약속을 배반할 줄 몰랐다.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순수한 마음 하나로 자신의 모든 걸 바쳐 울었다. 이 르포르타주는 옥빛 눈물로 빚어진 절망과 희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제 존재하지 않고 가슴속에 상징으로 남은 85호 크레인의 붐대는 새끼손가락을 닮았다. 살아서 내려가는 연습을 하려고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 앞으로 일곱 발짝, 돌아서서 다시 일곱 발짝을 내디딘 조정실 앞 난간은 새끼손가락을 걸고 다짐의 약속을 찍던 엄지다. 그 아래서 눈물과 웃음, 절망과 희망을 품고 달려온 숱한 이들의 약속으로 이 르포르타주는 쓰였다."<14~15>

 "소희씨 목소리 좋다"는 단잠식구들의 말에 넘어가 덜컥 무대에 올랐으나 너무 어설퍼서 다른 작가분들에게 미안했습니다. 

다음부턴 그대들이 읽어요.. ㅎ



단잠의 김달님씨게서 이날의 사회를 맡아주셨습니다. 차분하고 재치있는 진행이었습니다.



[19:40] 1부 '85크레인'을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과 박성호 한진중공업 부지회장께서 낭독하셨습니다. 

정리해고 투쟁 당시 크레인 위에서 삶의 고락을 넘었던 두 분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배어나왔습니다.



[20:00] 첫번째 대담 시간입니다. 정윤 작가님께서 사회를 봐주셨고요. 멀리서 김하경 작가님이 함께 자리하셨습니다.

<종이배를 접는 시간>의 김은민, 허소희 작가가 두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정윤 : 시간이 참 빠릅니다. 벌써 재작년이네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와 크레인 투쟁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참 안타까워했는데 그때의 기록들을 책으로 엮어서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51일에 <종이배를 접는 시간이> 따끈하게 출간되었는데, 소개를 좀 해주시겠습니까?

 

허소희 : 종이배를 접는 시간은 2010400명 정리해고 발표 그 시점부터 3년간의 시간을 기록했고요. 한진중공업 투쟁이라고 하면 김지도님의 크레인과 희망버스, 이 두 가지로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형님누나를 크레인에 올려 보내고 밑에서 조합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희망버스라는 그 많은 사람들이 왔다갔고 그 시간들을 어떻게 견디셨을까. 그런 고민지점을 가지고 작업에 임했습니다.

 

정윤 : 원래 책을 내려고 취재를 한 건 아니죠?

 

허소희 : , 저희는 카메라를 들고 어떤 사안이 터지면 달려가는 습성이 있는 사람들인데요. 당연히 지역의 큰 문제였으니 달려갔던 것이고 그곳에서 하루하루 맺어진 인연들로 책을 내달라는 제안을 받고 이렇게 결과물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정윤 : 희망버스가 기획될 때 신문에 많은 글들이 연재됐었는데. 그중에서 저는 홍세화 선생님이 연대라던가, 사람을 살리러간다던가 거창한 이유들도 있지만 자신은 부끄러움을 느끼러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글을 보고 제 가슴 속에 무딘 부분들이 연해지는 걸 느끼며 무조건 가야된다는 생각을 하고 가게 됐습니다. 3년 동안 쭉 경험을 하시면서 많이 느끼면서 달라진 것을 말해주시겠어요. 저는 두 분을 보고 상당히 젊다는 것에 놀랐어요. 지금도 오신 분들도 대부분 늙은 노동자인데. 많은 것들이 변하고 느끼지 않았을까 궁금한데, 어떻습니까?

 

허소희 : 3년간의 투쟁 기간동안 이뤄낸 것도 있고, 못 이뤄낸 것도 있잖아요. 아저씨들 투쟁하시는 거 보면서 많이 배운 점은 이룬 것을 많이 과장하거나 미약한 부분을 한탄하시기만 하는 게 아니고 그 하나하나를 과정과 밝아가는 디딤돌로 생각하시는 걸 보고 정말 저렇게 삶을 살아가는 자세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결국 이 점들이 아저씨들이 이루고 싶어 하시는 노동해방을 향해 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은민 : 저는 여기 미디토리 들어와서 이런 일을 접한 것도 몇 년 되지 않았고, 어느 샌가 저한테 활동가라는 이름이 붙었어요. 처음에는 굉장히 낯설었어요. 왜 나한테 왜 저러지. 내가 무슨 활동한다고?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활동을 구분하지 않고도 저한테 자연스럽게 다가오게 된 게 이런 투쟁을 같이 결합하고 형님들과 만나고 알게 되면서였어요. 제가 아저씨들께 딱히 도움된 건 없지만 영상이든 글이든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이 책이 인터뷰를 몇 분 정도만 한 게 아니고, 책에 실리지 않은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다 싣지 못한 게 아쉽고, 이분들이 다 주인공이세요. 인생의 주인공이시고, 이 책의 주인공이시고. 저희는 다만 말을 받아서 적었을 뿐이고요... 



그 어느때보다 진지했던 순간.



정윤 : 김하경 선생님께서는 한진중공업 투쟁과 관련해서 어떤 법정이라는 콩트를 쓰셨죠. 예전부터 한진중공업이나 김진숙 지도위원이나 그 분들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번에 정리해고 투쟁을 보시면서 느낌이 어땠습니까?

 

김하경 :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전노협 처음 생긴 90년에 시작됐을 때 전국에서 한진중공업이 처음으로. 한진재벌이 머리가 좋은가봐요, 재벌 중에서.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시작됐는데 그때를 시작으로 한 20년이 된 거 같아요. 가만히 생각하면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유난히 투쟁을 잘하는 게 아니라 한진중공업 재벌이 워낙 악랄하기 때문에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노동조합이 회사를 많이 닮는다고 생각합니다. 회사에서 탄압이 심하면 노동자도 굉장히 강성이 되고 회사가 협상의 여지가 있고 유도리가 있으면 노동조합도 약간 유순하다고 해야 할까. 유순하다는 것엔 어폐가 있지만 한진은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거기 노동조합이 얼마나 힘들까? 당사자는 아니지만 늘 머릿속에 생각하는데 이번 85크레인 투쟁을 보면서도 정말 솔직히 말하면 지겨워서 보기도 싫을 정도로 또 한진중공업이야?’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일반 사람이 볼 때는 20년 동안 언제나 그런 식으로 말해놓고 뒤집고 말해놓고 뒤집고 그런 식의 약속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들이니깐.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당사자들은 얼마나 힘들까요?

 

정윤 : 종이배를 접는 시간이 결국엔 한진중공업 투쟁뿐만 아니라 이 시대 노동자들의 운명, 삶과 모든 것들을 기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어떻습니까?

 

김하경 : 사실은 소설은 어떻게 보면 가공한 작품입니다. 1차가 신문기사 같은 것들이라면 2차가 조금 더 깊이 있게 해서 책으로 내는 르포르타주라고 할까요. 그 다음이 좀 더 가공해서 소설로 만들어내는데. 일본 같은 경우는 르포르타주가 굉장히 많아서 작가들이 일부러 취재하러 가지 않아도 이미 나온 기록물만으로도 얼마든지 상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문화다. 우리나라는 그게 부족하다. 밑바닥이 부족하다. 모든 것을 작가가 취재하고 상상도 해야 하는 굉장한 부담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르포르타주는 많이 나오면 나올 수도 있고 2차 창작의 가장 중요한 원료라고 할까요? 물건을 만들 때 원자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현실이 1차면 르포르타주, 소설 이렇게 됩니다. 이분들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하고 기록물이라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제가 <내사랑 마창노련>도 썼지만 기록이라는 것을 많이 가질수록 역사가 귀하게 여겨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진중공업은 굉장히 힘드셨지만 그래도 옆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록해줬다는 면에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20:20] 밴드 엉클밥의 <섬집 아기> 공연입니다. 5차 희망버스 때 남포동에서 백기완 선생님이 이 노래를 부르셨는데요. 

"노래가 슬퍼 울지도 모른다"던 엉클밥 씨는 담담히 노래를 이어가셨고요, 객석에서 관객분들이 훌쩍거렸습니다.



[20:30] 2부의 주제는 '희망버스'입니다. 도경정 가족대책위 대표께서 첫번째 희망버스가 오던 날을 낭독하셨습니다. 



[20:45] 두번째 대담시간에는 유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투쟁의 주인공들이 자리했습니다. 

김정호 노동사회연구소 소장님께서 사회를 맡아주셨습니다.

(왼쪽부터 도경정 가대위 대표, 차해도 한진중공업 지회장, 김진숙 지도위원, 박성호 한진중공업 부지회장, 김정호 소장)



김정호 :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들 투쟁 따라하는 사람이 많기 보다는 같이 연대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한진중공업에 지난 투쟁을 보면 굉장히 어려운 고비들이 많았지만 다섯차례 희망버스 통해서 새로운 운동의 방식, 그리고 희망을 발견하는 시간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 노동자들의 투쟁에 언제나 마무리란 없죠. 일단 매듭이 지어지는 거고, 다시 그 다음의 투쟁을 출발하는 시발점이 되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박성호 : 우찌됐든 저희들 투쟁에 3년 정도 투쟁했는데 함께 해줘서 고맙고요. 얼마 전에 최강서 열사 생겨서 특히 경남본부와 지부 동지들이 적극적으로 사람이 많고 적고 떠나서 마음으로 함께 해주고 들어오다 다치고 그래서 그런 걸 보면서 동지들의 애정을 많이 느낍니다. 우리 투쟁 함께 해줘서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는 말 드리겠습니다.

 

김진숙 : 아까 복수노조 얘기가 잠깐 나왔었는데 저는 어떤 경우에도 조합원들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조간부들은 몸에서 사리가 세 말 정도는 나와야 내가 노동운동 좀 했다이런 얘기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요. 지금 복수노조로 간 조합원들도 민주노조가 없어지거나 무력화되는 걸 원치 않아요. 그런 이야기를 공식적으로 합니다. 또 와서요. 저는 그 분들은 우리가 힘이 강해지고 그리고 또 자기네들을 끝까지 지킬 수 있는게 우리라고 생각이 들면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그리고 사회자 말씀하신대로 저도 크레인 올라가서 유명해지긴 했지만 30년 전부터 싸워왔던 사람입니다. 정말 노동자들이 해방되는 세상이 오기 전까지는 크고 작은 싸움들이 계속 이어지겠지요. 그 싸움에 우리 경남지부 동지들 함께 하실 것이라고 믿고 제가 크레인 위에 있을 때도 그랬고, 최강서 열사 투쟁때도 경남지부 동지들 정말 열심히 헌신적으로 연대해줬드랬습니다. 그 점에 대해 정말 뜨겁게 감사드립니다.

 

차해도 : 그래서 저는 김진숙 지도위원을 좀 싫어합니다. 아까 박성호 동지도 그랬지만 복수노조가 만들어지면서 사실은 생계 문제가 걸려있다 보니깐 조합원들이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장 입에 풀칠을 해야 되는데 가장이 돈을 벌지 않으면 가정경제가 무너지는데 일부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다 끌어안고 사랑해라고 얘기하니깐 저는 인간이기 때문에 정말 극복하기 힘들더라고요.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지금 조금 조합원들이나 복수노조에 간 옛날 조합원들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현장에 가도 복수노조 조합원들이 저만 보면 도망을 갔습니다. 강물이 왜 갈라지냐 했더만, 조합원들이 쫙 갈라집니다. 현장에 가면. 일제히 화장실도 가기 싫은데 들어가고 놀고 있다가 올라가면 일하는 척하고 서로가 그런 시간을 필요했던 같고요.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메워지고 있는 걸 느끼는데 저는 이후가 큰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진중공업 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김진숙 지도위원이 내려오고 나서 120억짜리 크레인을 고철로 폐기처분했습니다. 그리고 담장이 6미터 높이로 높아졌습니다. 옛날에는 2미터가 최대의 높이였는데, 높은 담장을 100억을 들여서 정문과 담장 공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최강서 열사 투쟁을 했던 빈소를 쳤던 그 자리는 벽돌을 올려서 담장을 쳤습니다. 아예 안쪽이 보이지 않도록 문을 폐쇄하고, 경남지부 동지들이 불을 피웠던 그 자리는 아예 사각형 톱질을 해서 아예 그 땅 전체를 들어냈습니다. 올 겨울이면 이 작업복이 없어집니다. 스머프 얘기가 듣기 싫어서 올 겨울부터는 동복을 바꿉니다. 예전에 모든 기억을 지우겠다는 게 본심입니다. 회사가 끝까지 숨통을 조여 오면 저희도 또 다른 방식의 반항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경남지부 동지들 정말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다음 또 투쟁현장에서 뵙겠습니다.

 

도경정 : 이 책도 미완의 르포라고 하고, 지금 말씀하시는 것 보면 힘든 상황도 많지만 희망버스를 되새겨보면 희방버스라고 하면 다들 미소는 한 번쯤 지어지는 것 같고요. 저는 나중에 다른 사업장이나 먼 미래에 한진중공업 투쟁이라고 했으면 웃음부터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 몸에 사리가 나올 정도로 다들 열심히 현장에서 투쟁하고 계시고요. 사실 술도 한 잔하고 그러면 흥도 있으시고 다들 즐거우신데 간혹 가다가 핀트 안 맞으면 울고 그러시거든요. 몸에 사리 많이 나오실 분들인데요. 한진투쟁 끝이 안났으니깐요. 끝까지 관심 가져주시면 언젠가 한진 투쟁이 진짜 승리했을 때 이 과정 모두 통틀어서 어디다 내놔도 한진투쟁 보고 배워보자, 저렇게 투쟁하면 웃으면서 할 수 있다, 그리고 승리할 수 있다는 얘기 한 번 들어봤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같이 고구마 구워먹으면 투쟁했던 경남지부 간부님들, 안에서 라면도 없고 그랬는데 저희 라면 못 먹고 먼저 대접해드렸었거든요. 그 마음 잊지 마시고 다음에도 끝까지 연대해주시길 바랍니다




창원 북콘서트를 준비하며 커다란 종이배를 접었습니다. 참여자들이 힘을 합쳐 완성했습니다.

함께 종이배를 띄워준 창원분들 고맙습니다^^


글 | 희붐

사진 | 단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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