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부터 새롭게 선보이는 '미디토리가 사랑한 얼굴들'은 아녜스 바르다 영화의 한글제목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다큐멘터리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Faces Places, Visages, villages)에서 아녜스 바르다는 이렇게 말합니다.
“마을, 풍경, 얼굴을 찾아간다면 난 언제든 떠날 준비가 돼있어.”
그저 당신이 보고 싶어서, 혹은 그곳이 좋아서 가는 것 외에 다른 이유가 없는 작은 여행을 떠나보려고 합니다.
우리 사이엔 늘 ‘카메라’가 있어서 당신께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던 아쉬웠던 순간들. 이날만큼은 카메라 렌즈가 아닌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편안하게 서로의 안부를 나누려고 해요. 미디토리언들이 매월 돌아가며 오랫동안 기다려온 휴식 같은 만남의 순간들과 그 속에 오고 간 우정의 대화를 조금씩 기록해 나갑니다.
에디터. 지선
2023년 5월, 창원은 오랜만이다. 태경 씨가 아나운서로 몸담고 있는 경남 CBS가 그곳에 있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날에도 그녀는 다행히(?) 출근을 했다. 수년간 일했던 그곳에 출근을 한다는 것이 요즘 그녀에겐 새삼 특별한 일이 되어버렸다. 미디토리와는 녹음현장이나 회의를 위해 가끔 만났지만, 이날만큼은 온전히 태경 씨를 마주하기 위해 창원으로 향했다.
점심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간, 태경 씨는 언제나 그렇든 온화한 미소로 경남도청 입구에서부터 종종걸음으로 달려와 반겨주었다. 관공서가 많이 모여있는 경남도청 인근에는 아니나 다를까 맛집과 카페가 즐비했다. 요즘 핫하다는 카레집에서 가성비 넘치는 점심을 먹고, 분위기 좋은 카페로 향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요?
지난주에 국회에 다녀왔어요. ‘직장갑질 119’가 주최한 행사에 현장증언자로 참석했었는데요. 최근 3년간 계약 갑질로 제보된 사례를 전수조사하고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였어요.
증언하러 국회까지 다녀오셨군요. 휴가를 내시는 건가요?
회사에는 미리 ‘휴가를 좀 다녀오겠습니다.’ 말씀드리고 다녀왔어요. 제가 워낙 휴가 내고, 여기저기 많이 다니고 그러니까 그러려니 하시면서, ‘그래, 그래, 다녀와’, 약간 이런 분위기인 것 같아요. 감사하죠.
태경 씨는 현장 증언자 중 한 명으로 참석해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듯 외면당하는 '무늬만 프리랜서'인 노동자들의 현실을 증언했다.
"사업자의 지휘·감독을 받는데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라
프리랜서 등으로 계약하는 ‘위장 프리랜서’ 계약도 20.1%(128건)이었다.
경남CBS에서 해고를 당했다가 부당해고 판정을 받고 복직한 최태경 아나운서는
“정해진 근무시간 동안 정규직과 동일한 업무를 하고 정해진 급여를 받았는데도
회사는 프리랜서라고 주장했다”며
“프리랜서 방송인에게 프리랜서 계약서는 업무 범위를 규정하고
용역대금을 보장하는 울타리가 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경향신문, 23.5.8 <일할 땐 이래라저래라, 자를 땐 “너, 노동자 아니야” > )
관련기사 <미디어오늘> https://v.daum.net/v/20230508163515970
<경향신문> https://v.daum.net/v/20230508135549231
요즘 태경 씨는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하고 계신 것 같아요. 오늘 저와의 만남도 그중 하나가 될 수 있을까요? (후훗) 이 콘텐츠를 기획하면서 첫 만남을 누구로 할지 내부에서 고민하는 시간이 꽤 길었는데요. 결국엔 만장일치로 태경 씨로 정해졌어요. 저희와 함께 ‘라디오시민세상' 제작지원팀 활동이나 영상 내레이션 작업도 같이 하셨잖아요. 그 과정에서 바라본 태경 씨는 청취자 곁에 늘 가까이 있는 따뜻하고 친근한 아나운서로, 미디토리에겐 든든한 동료로 함께하고 계시니, 이참에 최태경 아나운서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세상에 꼭 알려야 해, 지금이야! 싶었죠. 무엇보다 태경 씨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다들 컸던 것 같아요.
(울컥) 감사합니다. 완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저희가 포부는 이렇게 큰데, 뉴스레터 구독자가 많지 않아 태경 씨에게 도움이 될는지는 모르겠습니다.(머쓱)
아니에요. 미디토리 뉴스레터를 구독하신 분들은 어쨌든 미디토리의 방향과 그 결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잖아요. 그런 분들이 제 소식을 접하시는 거니까 저는 편하고 좋을 것 같아요. 친구가 더 생기는 느낌도 들고요.
네, 그럼 말이 나온 김에 미디토리 친구들에게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태경 씨는 평소에 스스로를 어떻게 소개하는 편인가요?
처음 만나는 사람들한테는 그냥 진짜 “경남 CBS 최태경 아나운서입니다.” 이렇게 했었죠.
그런데 요즘은 그 멘트를 똑같이 하긴 하지만 스스로 좀 다른 의미를 담는 것 같아요. 노동자로서의 아나운서라는 정체성을 깨달아 가는 중이기도 해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냥 제가 나름 좋아하는 일이고, 그 일을 하고 있으니 아나운서라고 소개했다면, 지금은 저를 지지해 주시는 분들이 아나운서 최태경의 정체성을 지켜주고 계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요즘은 아나운서라는 단어의 무게감이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타인의 의지가 더해져 태경 씨의 정체성이 더 단단해진 느낌이 드네요.
네, 저의 정체성을 만들어주는 과정 같아요. 사회적인 생명, 그런 걸 주변분들이 만들어주고 계시고요. 저를 지탱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이 빚을 평생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하고요.
주로 라디오프로그램을 하시잖아요. 개인적으로 즐기는 매체도 라디오인가요?
네, 맞아요. 제가 실제로 좋아하는 매체도 라디오고요, 너무나 감사하게도 일로 만난 매체도 라디오예요.
그래서 일에 대한 만족감이 좀 높은 편인 것 같아요. 라디오만의 매력이 확실히 있거든요.
오, 라디오만의 매력, 어떨 때 주로 느끼시나요?
저는 이게 일이기도 하니까 제작할 때 많이 느껴요. 라디오는 인터뷰 녹음을 하러 나갈 일이 많은데요. 확실히 현장에서는 영상 카메라가 있느냐에 없느냐에 따라 인터뷰이들의 긴장 정도가 다른 것 같아요. 영상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 시간이 좀 오래 걸리는 편인데, 라디오는 상대적으로 금방 나와요. 화자도 청취자도 편하게 말하고 들을 수 있고요. 무엇보다 현장에서 인터뷰하는 대상이 편해하니까 인터뷰어로서는 그래서 좋더라고요. 그렇게 이야기가 스스럼없이 나올 때 저도 그 얘기를 들을 수 있게 되고, 그 이야기가 저를 자극하고, 그게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지고, 그게 또 이분을 자극해서 또 다른 답변이 나오고... 그런 식으로 소통을 잘할 수 있는 매체가 ‘라디오’라고 생각해요.
어릴 때부터 라디오를 즐겨 들으셨어요?
원래 많이 듣진 않았어요. 어릴 땐 라디오, TV 반반이었던 것 같은데요. 방송 쪽 일을 하면서 점점 더 라디오가 좋아지더라고요. 라디오를 지키고 싶은 1인입니다. (웃음)
즐겨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다면요?
예나 지금이나 가장 즐겨 듣는 건 역시나 <시선집중>이네요. 손석희 아나운서의 날카로운 진행에 이어 요즘은 김종배 진행자가 하고 있죠. 물론 CBS에도 좋은 프로그램이 많아요. 김현정의 <뉴스쇼>도 유명하죠. 요즘은 팟캐스트나 글기사로도 많이들 접하시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좀 가장 마음에 많이 남는 프로그램은 예전에 정은임 아나운서가 진행하셨던 <FM영화음악>이에요. 새벽 2시부터 4시까지 했던… 그 프로그램은 아직도 많은 분들께 회자되고 있잖아요. 한진중공업 노동자 김주익 열사를 떠올리며 진행하셨던 오프닝 멘트는 아직도 많은 분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잖아요. 저는 손석희 아나운서 같은 스마트함은 없지만, 정은임 아나운서의 따뜻함… 그거는 ‘그래, 내가 할 수 있겠다.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만약에 저한테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은임 아나운서 같은 따뜻함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전할 수 있는 그런 아나운서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죠.
이미 우리 곁의 최태경 아나운서는 그러하십니다. (웃음) 평소 같으면 태경 씨의 하루는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마무리되나요? 태경 씨가 일하는 보통의 날들을 좀 떠올려보신다면요?
일반적인 직장인들하고 똑같은 패턴이에요. 진짜 특별할 게 없거든요. 9시 전에 출근해서 업무 준비하고, 시간 맞춰서 방송하고 점심 먹고, 오후 근무하고 그리고 퇴근하고 그냥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이 돌아가곤 했어요. 요즘은 아무래도 좀 일상의 긴장도가 높기는 한 것 같아요. 집에 갈 때쯤 되면 약간 피곤하고 번아웃되기도 하고 그렇긴 한데…근데 이것도 그냥 제 일상 중에 하나로 어느 순간 받아들였어요. 이 긴 싸움을 일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빨리 해결해야 될 숙제라고 생각하니까 제가 조급해지고 스스로를 기다려주지 않고 재촉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 싸움은 제가 스스로를 지치지 않게 하는 게 관건인 것 같아요. 제가 저를 좀 많이 기다려주는 여러 가지 방법을 좀 찾았죠.
내가 나를 기다려주는 방법, 어떤 게 있을까요?
투쟁하면서 생긴 루틴 중 하나예요. 점심 먹고 산책하기. 산책하고 나면 리프레시되는 느낌이 확실히 있어요. 그러고 다시 일에 집중하는 거죠. 그렇지 않으면 이 긴장감을 내 업무와 일상 하나하나에 매 순간 안고 가게 될 것 같아서 중간에 산책을 꼭 하는 편인데 해보니 훨씬 낫더라고요.
투쟁하면서 생긴 루틴이 ‘산책’이라니, 서로 상반된 느낌이에요.
실제로 어르신들은 등산을 많이 가시잖아요. 어릴 땐 그 이유를 몰랐는데, 자연을 통해서 얻어지는 에너지가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산책하면 에너지도 많이 얻고 치유도 되고 제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산책한 지 얼마 안 됐을 땐, 머리는 회사에 가 있는 경우가 많았었거든요. 싸우고 있는 상황에 대한 고민들로 꽉 차 있어서 몸은 산책하고 있는데 마음이 산책을 하질 않더라고요. 그러다 어느 순간에 제가 지금 투쟁하는 이 상황이 나에게만 특별히 주어진 상황이 아니고, 누구라도 어디서든 겪고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딱 있었어요. 그때 약간… 뭐라고 해야 될까요? ‘자유롭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사실 지금 제가 특수한 상황이긴 하지만 우리의 일상 안에서도 나를 돌보는 시간, 나를 기다려주는 나를 위한 시간과의 분리가 좀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 느낌이 너무 좋았고, 앞으로도 이런 루틴은 좀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럼, 자연을 맘껏 느낄 수 있는 등산 같은 것도 좋아하시겠어요.
저는 등산을 개인적으로 안 좋아합니다. 힘든 걸 싫어하기 때문에, 그래서 ‘산책’을 합니다. (둘 다 박장대소)
그렇군요. 태경 씨가 회사에서 견뎌야 하는 그 긴장감을 내려놓기 위한 노력 중의 하나가 ‘산책’이었군요. CBS본사가 내린 지침을 기사로 접했을 때 저도 좀 놀랬는데요. 태경 씨랑 인사도 나누지 말라는 내용이 있었잖아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출근하면 긴장되는 건 너무나 당연할 것 같아요.
그 지시를 내린 건 본사고, 제가 출근하는 경남 CBS 직원들은 따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다들 같은 직장인이시고 조직에 속해있고, 지켜야 할 가족이 있는 분들이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회사가 제시하는 걸 따르지 않았을 때 그분들이 감당해야 될 게 너무나 많아요. 그냥 저는 어떻게 정리를 했냐면 ‘그분들은 그분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대로 최선을 다하는 거죠. 이걸 인간적인 섭섭함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사실 갑은 빠진 채로 ‘을과 을’의 갈등이 돼 버리는 거잖아요. 을끼리 싸우고, 을끼리 갈등하고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 저는 이 투쟁을 건강하게 이어가지 못할 것 같아요. 그러니 이거는 확실히 내가 ‘거리두기’를 좀 해야겠다 싶었어요. 이분들은 회사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는 입장이고, 우리는 각자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니까 마음이 좀 가벼워지더라고요.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계속 일하면 되지 않나 하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일한다고 했을 때 방송에서 보이는 모습 외의 현실을 대중들은 접하기 쉽지 않기도 하고요.
음.. 그렇죠. 보통 ‘프리랜서 아나운서’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KBS나 MBC, SBS에 있다가 프리선언하고 잘되신 유명한 아나운서분들을 많이 떠올리는데, 사실 대다수의 프리랜서 아나운서의 삶은 그렇지 않거든요. 정말 정말 불안정하고요. 그럼에도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많은 걸 양보하고 포기해야 되는 과정에 놓이게 되는 구조예요. 꿈 하나 바라보고 그 일을 하고 있는데, 그 꿈을 이용해서 또 너무 많은 산업들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투자라는 명목으로 소비가 강요되는 프로세스인 거죠.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의 삶은 사실은 그래요. 그렇다 보니 저는… 제 정체성을 좀 지키고 싶었어요. 제가 지금의 아나운서 일을 하기 전에는 다른 곳에서 취재 리포터로 시작해서, 또 다른 방송에서 기자 생활 잠깐, 라디오 PD 생활도 잠깐 했었어요. 방송이 좋아서 그 울타리는 떠나지 않고 그 안에서 이렇게 저렇게 해봤는데요. 저 다운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이 아나운서더라고요. 제가 거쳐간 직군들 중에서 아나운서를 가장 오래 했고, 이 일을 앞으로도 계속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좋아하는 조직에서 오래 일하고 싶다. 딱 그거였어요.
그렇게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대한 커리어를 안정적으로 계속 발전시키려면 일단은 건강한 일자리가 보장돼야 하는데 이게 안되면, 특히 진입단계에 있는 아나운서들에겐 가혹한 과정일 수 있겠네요.
네. 어느 정도 수익이 보장되는 위치까지 올라가는 게 힘들고, 특히 아나운서 준비생들 같은 경우는, 사설 학원을 비롯해서 헤어, 메이크업, 의상, 프로필 사진, 영상촬영 등 이 모든 산업들이 아나운서 준비생 한 명, 한 명의 꿈을 먹고 성장해 왔단 말이죠. 지방에서 아나운서 면접을 한 번 보러 가려면 이 전반의 비용을 자기 부담으로 안고 가야 해요. 이 친구들은 자기 꿈을 지키기 위해 다 감수할 수밖에 없죠. 그러다가 포기하는 분들도 계시고, 어렵지만 꿈을 지키기 위해 투잡 뛰는 분들도 계시죠.
태경 씨도 이런 과정을 거쳐 어렵게 지금까지 오셨을 텐데, 그렇게 첫 방송을 하게 되면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어때요?
제가 제 목소리를 마음 편하게 들을 수는 없었어요. 왜냐하면 나는 말을 하고 있고, 생방송 중이었으니까요. 나중에 방송 나가고 주변에서 ‘목소리 잘 들었다’, ‘방송 잘 들었다’고 피드백 주셨을 때 ‘내가 방송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죠. 첫방은 부산 KBS 라디오 생방송이었는데요. 1분짜리 짧은 교통 정보 방송이었고요. 그걸 하고 나서 지금도 이유를 모르겠는데 울었어요. 긴장을 많이 했던 것도 있고, 저 같은 경우에는 다른 분들보다 방송을 되게 늦게 시작했거든요. 다른 친구들은 거의 대학을 졸업하고 방송을 시작하면 스물네 살 즈음되거든요. 저는 딱 서른 됐을 때 첫 방송을 했어요. 다른 여자 아나운서분들은 20대 때 방송 한창하다가 30대에 방송 그만두는 경우가 더 많은데, 저는 남들 그만둘 나이에 시작을 했으니까요…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고 남들은 다 은퇴하는 나이에 나는 시작을 했기 때문에 그 자체가 감격이었던 것 같아요. 모든 게 감사했던 것 같아요.
‘첫방의 눈물’ 에피소드 하나만으로도 태경 씨가 무엇을 지키고 싶은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요즘은 개인 방송도 많고 누구나 생산할 수 있는 오디오 플랫폼도 많아졌어요. 이런 시대에 라디오 방송국 아나운서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맞아요. 저뿐만 아니라 방송일을 하는 분들이라면 그런 고민을 많이 하실 것 같고요. 심지어 라디오는 사양 산업이라는 말도 오래전부터 나왔죠. 라디오 방송국 아나운서로서의 나는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가야 되나 그런 생각을 진짜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근데 답이 잘 안 보여요. 그 와중에서 제가 하나 찾은 건요. 우리말이나 글이 많이 오염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거예요. 일상적으로 쓰는 표현 중에는 차별적인 단어나 표현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경우가 많아서 누구라도 그냥 아무렇지 않게 쓰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표현이 이젠 방송에서 간혹 들리기도 하고 인터넷 매체나 SNS상에선 더 많이 사용되고 있죠. 이런 상황이 괜찮은 건가? 이대로 나가도 되는 건가? 그런 고민이 들었어요.
예를 들면 외국인 노동자를 차별하는 표현이라든가 어린이를 비하하는 표현이라든가 그런 표현을 쓰지 않도록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보고 싶어요. 사실 언론 환경은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 지 오래됐고요. 그 기울기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저는 제가 마음이 좀 더 가는 분들의 목소리를 대중들에게 연결하는 ‘통로’로서의 역할을 하고 싶어요. 제가 어떤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그분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더 마련하는 것, 마이크를 내어주는 역할, 그걸 좀 잘하고 싶어요.
그런 역할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미디어노동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는데,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것 같아요. 미디어업계가 원래도 비정규직이 많았지만, 앞으로 더 심해질 거라는 전망…(한숨) 그래서 더더욱 태경 씨의 싸움을 지지하고 지켜보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어쩌면 용기를 내서 태경 씨처럼 싸움을 준비하는 분들도 계실 거 같아요.
처음엔 저의 정체성을 지키고 싶은 개인적인 이유로 출발했지만, 앞서 싸워 오신 분들이 계셨고, 거기서 힘을 받아 저도 계속 싸워볼 수 있겠다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 앞으로 또 이것을 경험하실 어떤 분들에게 도움은 되지 못할 망정 나쁜 선례로 남으면 안 되잖아요. 그건 후배들한테도 못할 짓이고요. 다른 분들이 싸우는데 제가 걸림돌 되면 안 되겠다는 그런 생각을 많이 했죠. 현재도 CBS 안에는 2년 넘게 비정규직으로 계신 분들이 계시고, 지금 저와 본부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드러나는 게 저 혼자일 뿐이지 많은 분들의 각자의 위치에서 마음을 보내주시고 같이 싸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진짜 여기저기서 저를 도와주시는 분들이 막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이 과정에서 제가 성장하고 있다는 걸 많이 느끼는 요즘이에요.
어떤 부분에서 성장했다고 느끼나요?
이전에는 노동자로서의 자존감이 좀 낮았던 것 같아요. 제가 법적으로 이기고, 회사에서 진짜 노동자로 인정해 주는 순탄한 과정만 있었다면, 그래서 당연한 듯 자연스럽게 복직이 됐다면, 지금쯤 나는 어떤 회사 생활을 하고 있을까 상상해 본 적 있는데요. 예전과 똑같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일하는 최태경이었을 것 같더라고요.
현실로 돌아와서 이렇게 싸우고 있는 저를 바라보면 저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될 때가 있거든요. 나약하고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는 그런 모습들이 순간순간 발견될 때가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용기를 내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건, 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해 주신 분들 때문이에요. 그분들과 함께 경험이 하나 둘 쌓이면서 제 안에 노동자로서의 정체성, 자존감 같은 게 조금씩 올라왔던 거 같고요. 그 과정이 투쟁이라서 힘든 건 사실이지만 솔직히 재미있어요. 물론 일상이 편하지는 않죠. 근데 그 과정 안에서 제가 배워야 할 것들이 많고, 제가 성장하는 게 하루하루 느껴지니까, 이 시기를 제가 정말 잘 겪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싸워보지 않으면 몰랐을 ‘진짜노동자, 최태경’으로 성장해 가는 재미가 있다는 말씀이 인상적인데요. 그만큼 성장통도 뒤따를 것 같아요. 태경 씨의 몸과 마음은 요즘 어떤가요?
사람이 몸이 약해지면 되게 사소한 자극에도 많이 아프잖아요. 좀 그런 상태에 오래 놓이는 것 같아요. ‘투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오래 놓이다 보니까… 어느덧 1년 6개월이 지나고 있는데요. 아주 사소한 거에도 예민하고 상처받기 쉬운 마음 상태가 오래 지속되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저는 시작부터 제 마음 건강을 잘 챙기면서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엄청나게 아픈 걸로 크게 한 대 맞는 것도 아프지만, 아주 사소한 자극을 같은 곳에 여러 번 반복해서 찔리거나 쓸리 거나하면 그것도 나중에 되게 아프잖아요. 나중에는 자기가 아픈지 모르는데 상처가 나 있기도 하고요. 저는 지금 그런 상태인 것 같아요. 제 마음을 스스로 케어하지 않으면 이 투쟁의 막바지에는 제가 원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가게 되거나, 제가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나마 다행인 건 제 성향이 대쪽 같거나 강직한 성향은 아니거든요. ‘그럴 거면 그래라’ 약간 그런 편이어서 오히려 좀 주변 상황의 영향을 덜 받는 것 같아요.
강직함보다 유연함으로?
네, 저를 잘 모르는 분들은 저를 강직한 성향으로 보시는데, 저를 아는 분들은 제가 얼마나 말랑말랑한 사람인가를 아시니까 차라리 그게 낫다고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지금 두 개의 다른 세계가 부딪히는 상황인데, 제가 너무 강하면 이걸 오래 끌고 가야 상황에서 얼마 못 버티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금방 튕겨져 나갈 수도 있고요. 그래서 좀 웬만한 건 좀 말랑하게 받아들이려고 하는 편인 것 같고요. 그럴 수 있지 뭐.. 하고 넘기기도 하고요. 물론 원칙과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요.
태경 씨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힘을 믿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싸우는 이유를 잊지 않고, 그 본질은 지키되, 본질이 아닌 모든 것들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다’는 마음과 태도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 같아요.
아나운서는 세상사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잖아요. 근데 요즘은 태경 씨의 이야기를 스스로 전해야 하는 상황이 더 많아졌을 것 같아요.
그래서 처음엔 너무 어색했어요. 저는 항상 질문을 하는 사람이었고, 상대방의 답변을 경청하고 그것을 다시 질문으로 되돌리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처음에는 정체성에 혼란이 오더라고요.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나, 난 누구? 여긴 어디야? 약간 이런 느낌이었는데요. 제가 평소와는 반대로 인터뷰이가 되면서 좋았던 순간들은요. 처음엔 답변하기가 어렵지만, 말을 하면서 점차 자기 생각이 정리가 되면서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난 이걸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나는 이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구나를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스스로 몰랐던 저를 발견하는 순간이 몇 번 있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요?
우선은 이 투쟁을 잘해서 좋은 선례를 만드는 거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선례는 이 투쟁에서 이기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 회사에서 오래오래 열심히 성실하게 일해서 여자 아나운서로서 정년 퇴임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청취자분들께 좀 더 마이크를 내어주는 방송을 많이 하고 싶어요. 예전부터 약간 그런 꿈은 있었던 것 같아요.
마이크를 내어주는 방송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요?
예전에 장애인단체 대표님을 인터뷰를 했던 적이 있어요. 그분은 지체장애인이셨거든요. 제가 만들어야 할 방송은 라디오였고요. 그런데 대표님의 목소리가 청취자들이 알아듣기 약간 어려울 정도의 상태로 녹음이 됐던 거죠. 저는 제가 인터뷰했고 질문지를 만든 사람이니까 그분이 어떤 걸 말하고자 하는지 인지가 된 상태에서 녹음을 했기 때문에 현장에서 다 알아들을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내용을 모르는 청취자들은 알아듣기 힘들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걸 밤새도록 방송할 수 있는 상태로 편집해서 결국 방송에 내보냈어요. 외국인 노동자분 한 인터뷰를 하는 상황이었는데 외국인 노동자분들이 한국어가 이제 익숙지 않은 분이 하고 싶은 말을 하셔도 이게 이제 청취자들이 알아듣기 힘든 그런 상황이었는데 그것도 어떻게 제가 해서 방송을 할 수 있게 편집을 해서 방송을 내보냈어요. 듣는 데 무리가 없이 그러니까 저는 그분들의 목소리가 그냥 그대로 전달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에 어쩌면 무모했을 수도 있는데, 시도를 해봤죠.
방송을 들으신 인터뷰이나 청취자들의 반응은 어떠셨어요?
다행히 출연하신 분들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잘 전달되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그런 방송을 자주 하고 싶어요. 그런 기회가 많이 주어졌으면 좋겠고요.
장애인이나 외국인 노동자의 목소리를 최대한 방송에 내보내기 위해 편집단계에서 많은 노력을 하셨군요. 저희도 미디어접근이 쉽지 않은 분들을 지원할 때 최대한 저희가 손대지 않고 그분들의 목소리 그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호흡이나 숨소리, 침묵의 언어들을 최대한 살려서 제작하려고 노력할 때가 있거든요. 매번 느끼지만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태경 씨의 그런 시도들이 더 인상적이고, 앞으로의 방송도 기대되는 것 같아요.
저도 그 갈등을 항상 해요. 있는 그대로 방송에 내보내는 게 맞았던 거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죠. 이런 고민은 다양하게 현장에 늘 존재하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모두 해결할 순 없어요. 제 뒤에 오는 후배들에게 징검다리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것, 그것을 목표로 한다면 어떨까요? 제 상황에서 가장 이상적인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으면 너무 좋지만 지금 당장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니, 나는 이 고민을 요 정도로 실현해 보고 정리해 보고, 그보다 좀 더 나은 고민을 후배들이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정도의 노력이면 그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미디토리 식구들과 워크숍이나 세미나를 열어서 배리어프리 제작 노하우나 경험을 나눠봐도 좋을 것 같아요.
네, 좋아요. 미디토리와는 영상 내레이션 작업을 할 기회가 몇 번 있었던 것 같네요. 부산 MBC <라디오시민세상> 프로그램 제작지원할 때도 자연스럽게 만났던 것 같아요. 녹음하는 현장에서 미디토리분들을 만나면 저는 안심이 돼요. 그런 게 있어요. 만나면 되게 안전한 느낌이 들어요. 얼마 전 지방선거 특집 방송 제작할 때도 미디토리 유진 씨와 같이 취재를 다녔는데, 그런 느낌을 굉장히 많이 받았거든요. 무척 빠듯한 제작일정이어서 바쁘게 섭외하고 돌아나니고 그랬지만 쫓기거나 그런 느낌이 안 들고 되게 편하더라고요 재미있기도 했고요. 그때 이런 생각했던 게 기억나요. 미디토리 분들은 함께 일하실 때 서로에게 이런 느낌을 받으면서 일하시겠다…그런 생각을 했어요.
태경 씨와의 대화는 카레로 시작해 맛있는 커피를 머금고, 가로수길을 걸어올 때까지 이어졌다. 어느덧 저 멀리 경남CBS가 새겨진 건물이 보였다. 태경 씨는 다시 씩씩하게 회사로 걸어 들어갔다. 스스로를 말랑말랑한 사람이라고 했지만, 태경 씨가 걸어 들어간 그곳에서의 싸움은 결코 순탄치 않은 하루의 연속일 것이다. 이 긴 싸움 뒤에 그에게 다가올 먼 미래를 상상해 본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마이크를 내어주느라 꽉 찬 하루를 보낸 어느 할머니 아나운서의 퇴근길, 그녀의 하얀 머리카락에 창원의 아름다운 노을이 앉아있다.
안녕하세요?
이제 한낮에는 제법 초여름이 느껴집니다.
저는 지난 5월 8일 국회에 방문했습니다.
<직장갑질119>가 주최한 '직장갑질119 최근 3년 계약갑질 제보 전수조사 분석 발표회' 에 참석해서 현장 증언을 했는데요.
투쟁 이후 이번이 두 번째 국회 방문이었습니다.
조금 긴장이 되기도 했지만, 낯익은 분들이 많이 계셔서 편하게 저의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었습니다.
저 외에도 세 명의 노동자 분이 증언을 하기위해 참석해주셨는데요.
국어 강사, 언어치료사, 캐디 그리고 아나운서까지...
접점이 없는 직군이었습니다.
하지만 계약서 상으로는 프리랜서지만 근무는 정규직처럼 한 '무늬만 프리랜서'라는 점은 모두 같았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참고 꿋꿋하게 증언을 이어가시는 모습에 저도 쏟아지려는 눈물을 꾹 참기도 했고요.
아시다시피 저는 사측의 복직명령 이행에서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현장증언자 분들은 노동자성을 증명하는 과정부터가 험난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근로감독관으로부터 인격모독성 발언과 갑질을 당한 경우도 있었고요. 예전에 홀로 싸우는 노동자분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 사례를 들으시고 하신 첫 마디는 '부럽다'였습니다. 막연하게 느껴왔지만, 제가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투쟁을 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절감했습니다. 노동자로 온전히 인정받지 못한다는 공통점 때문이었을까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묘한 연대감이 느껴졌는데요.정작 국회발표회 현장에서는 마음을 전하지 못했습니다.그래서 SNS 공간을 빌려 현장증언을 해주신 분들께 지지와 응원의 마음을 보냅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듯 외면당하는 '무늬만 프리랜서'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최태경 페이스북 <나의 투쟁일지 24> 중에서, 2023.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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