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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초록영화제 [기프실] 상영후기

film /독립영화 리뷰

by 미디토리 2019. 2. 11.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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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초록영화제는 25일 7시 민주노총부산본부 4층에서 다큐멘터리 <기프실>을 함께 봤습니다. <기프실>은 부산의 대표적인 다큐멘터리 제작그룹 오지필름의 문창현 대표의 작품으로 4대강 사업으로 수몰되는 기프실 마을을 기록하였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겨 있기도 한데, 바로 감독의 할머니가 기프실에 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태어난 곳이자, 명절이면 온 식구들이 모이기도 했던 장소가 이제 물에 잠긴다고 하니, 카메라를 든 동기마저 무척 극적입니다. 



특히 1월 초록영화제는 용산참사 10주기를 맞아 용산참사10주기 부산추모위원회와 함께 진행했는데요, 국가 폭력에 힘없이 스러져간 철거민과 국책 사업으로 평생 살아온 집을 떠나야 하는 수몰민은 같은 선상에 놓여 있는 듯해, 국가는 역할과 책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기프실은 원래 마을을 끼고 낙동강이 굽이굽이 흘러 갔습니니다. 여름이면 주민들이 바지를 걷고 들어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바닥까지 훤히 비춰보일 정도로 투명한 강물을 자랑했습니다. 이 물을 끌어다 마을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삶을 꾸렸습니다. 



그런 마을에 댐이 세워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을이 물에 잠기고, 하루 빨리 떠나야 한다는 통보만 남았습니다. 많은 주민들이 떠나고 열 가구 남짓 남았을 때, 바로 문창현 감독이 기프실에 들어갑니다. 오라하는 곳도 딱히 없고, 함께 갈 사람도 여의치 않은 나이 든 어르신들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현재 영주댐 건설로 18개 마을이 잠겼고, 4개면이 없어졌습니다. 



마을을 촬영하며, 감독은할머니의 집에 잠겨 있던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 올립니다. 온 식구들이 모여 상이 부러지랴 큰 제사상을 올리고, 모이기만 하면 잔치 분위기가 나던 그날을요. 할머니는 손녀에게 따뜻한 눈길 한 번 준 적이 없지만, 이제는 이 집마저 두고 요양병원에 계신 할머니가 사무치게 그리워집니다. 감독에게 기프실은 국책사업에 순응해야 하는 민중들의 기억이자, 온 가족의 삶이 묻어있는 말 그대로 고향이기도 합니다. 




다음은 관객과의 대화에서 나온 내용을 그대로 옮깁니다.


 MC 허주영  오늘로써 3번째 <기프실>을 봤네요. 예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제목을 어떻게 '기프실'로 붙이게 되었나요?


 감독 문창현  영화가 완성될 쯤 고민을 하다가, 기프실 마을 이름이 어떻게 기프실이 되었을까 궁금해졌어요. 시골에서도 버스정류장이 있고 번화한 곳이 바로 기프실 동네에요. 과자 가게도 있고, 학교도 있죠. 그래서 할머니가 기프실에 가신다 하면 꼭 따라 나섰었죠. 과자를 사먹기 위해서요. 동네 사람들은 마을에서 가장 깊이 있어서 기프실이라고 해요. 그래서 옛날에 주민 학살도 있었다고 하고요. 영화 제목으로 기프실을 꼽게 된 건, 이 마을을 몇몇 주민들과 저밖에 모르잖아요. 많은 분들이 기억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이렇게 지었어요. 


 관객  중간중간에 시 같은 내레이션이 인상적입니다. 어떤 의도인지 궁금합니다.


 감독 문창현  제가 직접 썼고요. 영화를 보시다 조금 의아할 수도 있을 거 같은데요. 국책 사업 때문에 사라지는 공간을 저의 감성을 드러내면서 보여주고, 또 위로하고 싶었어요. 기프실은 사라진 공간이자, 저희 할머니가 사라진 공간이기도 해요. 공교롭게도 영주댐 공사를 앞두고 할머니가 병원에 계시다 결국 돌아가셨거든요. 지금도 사람이 살 수도 있고, 온갖 생명으로 가득한 공간인데 사람들이 사라진 거죠. 그래서 저희 할머니를 떠올리면서 내레이션을 썼어요. 


처음에 기프실 마을에 들어갔을 땐 비장한 마음이었어요. "이 무지막지한 국가폭력과 다름 없는 이 사업을 고발해야지"라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할머니가 병원에서 기억을 잃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굉장히 서글펐어요. 그 마음으로 마을을 바라보니, 할머니의 기억이 고스란힌 담겨 있는 곳이라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기프실에는 할머니와 저의 접점이 있는 곳이죠. 할머니는 손주가 30명이 되어서, 손녀인 저를 그렇게 예뻐하시지 않았는데, 할머니가 요양원에 계시면서 가족들에게 소외되는 시간이 이 기프실 마을이 사람들에게 잊히는 것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할머니를 위로하고, 제 나름의 방식으로 할머니를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니깐 내 안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과 이 사람들을 바라보는 감정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관객  마을 할머니들이 밭을 일구고, 파종하는 장면을 넣은 의도는 무엇인가요?


 감독 문창현  할머니들의 일상을 지켜보면서 가장 많이 본 게 바로 그 모습이에요. 할머니들은 놀고 있는 땅이 아까우니깐, 끊임없이 무언가를 심으세요. 그리고 마을에 남아 있는 다른 할머니들을 찍으면서, 할머니들이 카메라를 보고 "힘들다"는 얘기를 꼭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리석은 생각이었다는 걸 그 모습을 보면서 알았어요. "내가 왜 이 영화를 만들고 있을까?"라는 고민이 들 때마다, 고향이 한 순간에 사라져도 계속해서 땅을 숨구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내가 기억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공간이 변해도, 생명의 땅을 만들려는 할머니의 일상을 소중히 여기고 싶었어요. 


 관객  영화 중간중간에 들리는 새소리가 참 듣기 좋았습니다. 촬영기간은 어느 정도였고, 수몰에 저항하는 사람은 없었나요?


 감독 문창현  2012년 말부터 테스트 촬영을 시작했고, 2017년 겨울까지 촬영했습니다. 총 5년동안 찍었고, 1년 동안 편집하고 보충촬영을 해서 6년이라는 기간이 걸렸습니다. 새소리가 듣기 좋다고 하셨는데, 기프실 마을엔 사람이 떠나고 새소리만 들렸습니다. 원래 100가구 정도가 살았는데, 제가 들어 갔을 때 10가구만 남아 있는 상황이었어요. 그리고 공사 소리가 많이 들렸죠. 4대강 피해의 공간인데, 투쟁이라고 할 만한 사건을 없었고, 주민들이 목소리를 높인 건, 이주할 때 의견 차이 정도였습니다.


 관객  기프실 마을 자체가 할머니가 사셨던 공간입니다. 그래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가 없는 공간이란 생각이 들어요. 감독이 화면 안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도 보고요. 그래서 제작하면서 더 힘들었겠다 싶어요.


 감독 문창현  사실 영화를 볼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아요. 저의 어렸을 때 기억이 있는 곳이고, 할머니가 아버지를 키운 곳이고, 그리고 지금은 없어졌으니까요. 상실이라는 고통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각인되고 있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난 왜 카메라를 들고 있는 거지? 앞으로도 이런 질문을 할 순간들이 많을 거 같은데요. 이런 물음은 나 스스로를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할 거예요. 국가가 휩쓸고간 자리에 무엇이 남아 있는지도 고민을 했는데요. 참 허무했어요. 하지만 이 빈 곳을 채우는 건 각자의 몫인 거 같아요. 국가 폭력을 기억하고, 기프실 수몰은 다시는 어리석은 일들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과제를 던져 준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영화 <기프실>의 문창현 감독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다음 메시지를 남겼다. "국책사업으로 사라져가는 것들, 국가폭력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을 어떻게 기록하고 기억할 것인가? 다큐멘터리를 시작한 이후 나의 카메라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허덕였다. 할머니가 살던 기프실은 강물이 굽이굽이 돌다 여울을 만들어 가장 깊게 잠기는 곳을 의미했다. 우리의 기억은 의식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굽이굽이 돌다 검게 잊히게 마련이다. 국가 폭력이 반복되고 잔인한 역사가 되풀이 되는 것은 기억하지 않기 때문이다. 잔인한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기록하고 기억하며 저항하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역할이다. <기프실>은 영주 댐으로 사라질 마을을 기록하여 국가의 잘못된 정책에 저항하고, 제대로 기억하기 위한 나의 첫 번째 여정이다."



다음 2월 초록영화제는 2월 23일 중앙동 한성1918에서 <B급 며느리>를 함께 볼 예정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 누구나 참석 가능합니다. 



정리/ 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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