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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동 사람들의 마을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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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토리 구성원들은 회사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지역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알리는 퍼블릭 액세스 활동을 해왔는데요, 사회적기업을 꾸리고 여러 사업을 진행하는 와중에도 미디어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퍼블릭 액세스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15년 올해부터는 미디토리가 라디오를 통해 만나고 있는 다양한 부산 시민들의 이야기를 블로그를 통해 알려드릴 겁니다. 여기서 시민들의 목소리가 어떻게 모아지는지, 또 어떤 일들이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함께 보시면 좋겠습니다.  


먼저 퍼블릭 액세스(Public Access)는 시민들이 직접 기획하고 제작한 영상과 소리를 방송으로 내보내는 활동과 그 권리를 말합니다. 부산에도 다양한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이 있는데요, 그 중에서 미디토리는 부산 지상파 방송 중 최초로 만들어진 부산MBC <라디오 시민세상>에 제작지원단으로 결합하고 있습니다. 







7월 둘째주 라디오 시민세상은 아미동을 찾아갔습니다. 부산에 살면서 '우리 마을'이란 말을 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건데요. 서구 아미동에서는 마을 사랑이 각별한 주민들이 살고 있습니다. 아미동은 부산시 서구의 부민동, 사하구의 감천동, 괴정동 사이에 있는 마을로 서구와 사하구의 경계가 되는 지역입니다. 인구 만 명으로 결코 작지 않은 마을입니다. 



열 살 단짝친구 동미와 인혜가 사는 마을이고요.

밤하늘에 별이 반짝이는 마을입니다. 열다섯 살 부터 아미동에 살아온 대학생 강소연 씨는 반짝이는 별을 볼 수 있는 아미동의 밤을 좋아합니다. 




"아미동이라고 하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생각하기엔 산비탈에 위치한 작은 동네라고 생각하시는데, 그렇지 않고 여기는 옛날에는 교육의 중심지인 서구이고, 입지 조건 굉장히 좋아요. 병원도 가깝고 시장도 국제시장, 남포동이랑 가깝고. 생활환경은 정말 살기 좋은데."


아미동에서 나고 자란 손정미 씨는 마을에서 누구보다 바쁜 사람입니다. 두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면 11통 통장의 역할로 마을 구석구석을 둘러봅니다. 간밤에 내린 비로 빗물이 고여 있는 곳은 없는지,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은 없는 지 주변을 살피고 나면 어느덧 점심때입니다.


"우리가 그 집 며느리는 아니더라도 그런 것처럼 해달라고 해주면 해주고, 휴대폰 가르쳐 드리고. 약 사다드리고. 사람 냄새가 나고, 우리 동네만 가지는 자랑거리가 있으면 좋겠다. 할머니들 젊은 사람들 관계를 맺고. 어려운 사람들 찾아뵙고. 내가 모르는 내 능력 알게 돼서 좋고. 제가 바라는 동네도 사람냄새 나는 동네, 아이 키우기 좋은 동네입니다." 



아미동의 엄마들은 마을의 자랑으로 오래 사신 어르신들이 많다는 것을 꼽습니다. 어르신들의 삶의 지혜 뿐 아니라 마을에 관한 귀중한 기억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꼭 물려주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아미동의 시계바늘은 다른 여느 마을처럼 빠르게 돌아갑니다.


"남아 있는 모습. 지금은 거의 없는 거 같아요. 도구통집이라 해서 술 밀주 만들어서 팔던 집도 있었는데 지금은 없고, 골탕 집으로 불렀던 집도 흔적도 없고. 그나마 오래됐다 할 수 있는 게 국수집. 지금은 거의 흔적이 없는 거 같아요. 옛날에는 어르신들이 계단 올라오기 힘드니깐 중간쯤이니깐 급하게 국수를 말아먹고 요기를 하신 거죠. 네 집이 있었죠. 지금은 거의 없어지고 한 집만 있는데. 어르신이 주인이 돼서 세를 준 거죠. 학교부터도 완전 최신식이잖아요. 부산 시내 몇 손가락 들 정도로 시설이 좋고."



마을의 오래된 기억을 남기고 싶은 마음은 사회복지사 권대교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4년 전부터 아미동을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기 위해 여러 주민들을 만나고 다닙니다.


"하루에 반나절은 주민 만나기에 빼야되겠다 싶으면서 주민들을 만나요. 주민들의 실감나는 옛날 얘기를 날것의 언어로 다 들을 수 있잖아요. 그런 얘기 들을 때마다 굉장한 시공간을 초월한 역사성 속에 내가 있구나 생각이 들고."


권대교 씨는 아미동 할머니들이 모이는 덕이 사랑방에 오랜 만에 들렀습니다. 복지관 서류 업무에 치여 한동안 인사드리지 못했어도, 할머니들은 그녀를 반갑게 맞이합니다. 따뜻한 감자를 내놓으며 아미동의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좋아하십니다.


"아미동에 좋아서 여 살았다. 어릴 때부터 요 살았으니깐 요 살고. 살다가 할배 만나가 결혼해서 요 살고. 오래 여서 산 사람은 내 밖에 없어. 어디부터 딱 말해줄꼬. 대학병원이 어딨었나 보면. 전부 포장마차가 있었다 사람들 전장 치러서 유골들 갔다놓거든 화장막이 고 있었다. 좀 올라오면 사쿠라 나무가 쫙 있었고. 다섯 그루가 있고. 여기서부터는 다 차돌이 집에 깔려 있었고. 이쪽에 보면 일본 사람들 비석이 층계층계로 있었고, 고서 언청 교회 안 있나. 그 상상교 지나가면 일본 사람들 장군묘가 있었나보다." 



아미동은 구한말 일본인들이 들어오면서 다니마치라는 일본식 지명을 갖게 되었고, 일제 강점기 때는 일본인들이 화장장과 공동묘지를 만들었습니다. 이윽고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부산으로 이주한 피난민들은 부족한 건축자재 대신 화강암으로 된 비석 위에 집을 지었습니다. 자갈치에서도 하얀 비석은 눈에 띄었고, 아미동은 비석마을이라는 또다른 이름을 갖게 됩니다.


"일본 사람들 비석이 있었는데. 공동묘지라. 올라가서 보면 여시가 뜯어먹고 그런 것도 있었다."

"자갈치서 아미동을 찾아오려고 하면 여기가 비석이 하얗거든. 그거보고 찾아온다."


저녁 7시 어스름이 내리면, 좁은 골목길을 따라 노란 가로등이 켜집니다.

어느 집 부엌에서 뽀얀 수중기가 새어나오고 끝까지 운동장에 남아 있던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갑니다.

전쟁의 아픔, 농촌의 배고픔을 피해 피난민과 이주민들은 산으로, 산으로 올라 집을 지었고 항구의 슬픈 역사는 물이 아닌 땅에 새겨졌습니다. 100년 간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는 부산시 서구 아미동.

오늘 아미동에는 또 어떤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을까요?





부산MBC 방송국 홈페이지에서 다시듣기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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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팟빵 팟캐스트 서비스를 통해서도 다시 들으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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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토리의 퍼블릭 액세스 활동은 쭉 계속되고요, 부산 시민들과 공유하고픈 이야기가 있거나 제작에 참여해보고 싶으신 분은 

meditory@meditory.net, 070-4349-0910으로 연락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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