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참." 람티빅키우(29) 씨가 한숨을 내쉬자 라디오
녹음실이 '깔깔깔' 웃음소리로 가득 찬다. 그녀는 오늘 자꾸 발음을 틀린다. 그런데 실수가 이어지자 녹음실 분위기가 착 가라앉는다. 동료들 표정도 심각해진다. 지난 13일 부산 해운대 시청자미디어센터 3층 라디오 녹음실 모습이다.
전문
방송인들은 아니어도 라디오 녹음 과정은 예사롭지 않다. 고향의 외할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낭송으로 눈시울을 붉히게 하더니 부산 도시철도 소리에
에세이를 더한 코너로 한껏 감성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바로 베트남 여성들이 직접 참여해 만드는 팟캐스트 '베트남
목소리(www.tiengnoiviet.iblug.com)'다.
미디어 사회적기업 '미디토리' 후원
이주 여성·유학생 등 8명 모여
부산 체험담·베트남 소식 등 전해
한 달간 2천500차례 방송 다운로드
"은행 돈 부치기 등 한국 적응 큰 도움"
■부산 베트남인 이야기가 세계로'베트남 목소리'는 베트남 이주여성과 유학생 등 여덟 명이 참여해 만든다. 그들이 부산에서 살며 직접 체험하고 느낀 부산과 그들이 살아온 베트남을 이야기한다. 지난 7월 말부터 방송을 시작했는데 그 반응이 상당하다.
지난 한 달간 방송 다운로드 횟수는 모두 2천500여 차례. 지역적으로는 당연히 베트남이 가장 많아 1천900차례쯤 되고 다음으로 한국이 400회. 일본 중국 싱가포르는 물론 미주나 유럽
아프리카에서도 다운을 받고 있다.
방송 아마추어인 베트남 여성들이 부산에서 만드는 팟캐스트 방송으로선 상당한 결과다. 그들은 컴퓨터로
메일 보내는 일조차 생소한 여성들로 직접 방송을 제작하는 일은 더군다나 처음이다. 방송은 재미있기도 하고 필요하기도 하다. 방송 기획부터 제작, 그리고
SNS를 통한 홍보까지 모두 그들 손에서 이뤄진다.
처음엔 30분짜리 방송을 너댓 시간 걸려 녹음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조금 익숙해져 세 시간쯤이면 녹음이 끝난다. 부산 사상구 인디스테이션 내 다문화무지개카페에서 기획회의를 하고 취재와 원고 준비를 한 뒤 해운대 시청자미디어센터 라디오녹음실을 빌려 녹음을 한 뒤 방송을 내보낸다.
유익하고 감동적인 방송 내용이 이 팟캐스트의 자랑이다. 방송 각 코너는 유동적인데 지금까지 '베트남 선배 만나기' '우리 남편 No.1' '생활
법률' '음악편지' '베트남 소식' '베트남 시' 등을 운영해 왔다. '베트남 선배 만나기' '생활법률' 같은 코너는 유익했고 '음악편지' '베트남 소식' 코너는 감동이 가득했다. 반면 '우리 남편 No.1' 같은 코너는 절반의 실패로 끝났다. 기획 당시엔 남편들 뒷담화 한 번 해 보자는 거였는데 모두들 남편 칭찬만 계속해 그만 코너 문을 내려야 했다.
■그리움에 재미 얹어 하나가 되다서툴지만 그래서 때로는 감동이 더 커진다. 고향을 그리는 향수, 떠난 가족을 향한 그리움이 방송 한 회 한 회에 담기는 덕분. 때때로 세련되고 잘 짜여진 방송을 뛰어넘는다. 이런 힘은 한국에 온 지 1년 된 람티녹후엔(22) 씨 등 고향 사람을 한자리에 모아 방송을 듣게 만들기도 한다. 람티녹후엔 씨 언니 람티녹한(25) 씨 역시
코디네이터로 팟캐스트 제작에 참여 중인데 그녀는 "고향 하오양은 호찌민에서 남쪽으로 차를 2시간 타고 가야 닿는 마을인데 마을 사람이 모두 모여 방송을 들었다고 엄마가 울면서 전화를 했다. 감동적이었다"고 전했다.
"너무 뿌듯할 때가 많아요." 람티비키우 씨는 한국 온 지 4년째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팟캐스트 제작에 참여한 이유는 한국 문화 적응이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서다. 그녀는 "도시철도 타기나 은행 돈 부치는 일은 사소한 듯 보여도 적응하기 쉽지 않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으니 큰 어려움이 된다.
우리 방송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베트남 목소리' 참여 경험은 한국 정착에 직접 도움이 되기도 한다. 진행을 맡은 찐티하인(22) 씨. 그녀는 동의대 관광
경영학과에서 유학 중인 학생이다. 첫 방송 때만 해도 자신감 없는 목소리가 흠이었는데 지금은 당차고 분명한 진행으로 방송을 이끌고 있다. 이런 경험은 한국에서 직장을 얻어 정착하기를 희망하는 그녀의 미래에도 큰 자산이 될 듯 보인다.
"웰 메이드한 방송을 하자는 게 아니에요. 이 팟캐스트 제작이 계기가 돼 그들끼리 뭉치고 그들의 이야기를 자신들의 목소리로 계속 알려 나갔으면 좋겠어요."
방송 제작을 돕는 미디어 사회적기업 미디토리의 허소희 씨 얘기다.
■다문화 시민의 문화를 부산 문화로 팟캐스트 '베트남 목소리'의 '베트남'은 베트남 말을 뜻한다. 이주여성들은 한국으로 오면 문화나 언어를 빠르게 습득해야 하는 처지다. 자국어로 소통하면 더 빨리 정보나 감정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통로가 지금껏 잘 열리지 않았다. 이런 필요성에 공감한 부산문화재단이 처음 팟캐스트 방송을 추진했다. 지난해 처음 운영했는데 성과가 좋아 올해는 6월부터 연말까지 2기 사업을 이어 가고 있는 것.
베트남인들의 힘으로 만드는 팟캐스트가 이 사업의 취지다. 부산문화재단 담당자 고윤정 씨는 "이주 여성들은 한국 문화가 낯설어 힘들어 하고 서로 정보를 공유할 수 없어 어려움을 겪는다. 그들이 자유롭게 얘기를 하도록 장을 만들어 준다는 게 취지. 장기적으로 다문화 시민의 문화 역시 부산 문화로 가꿔 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베트남 목소리'는 1회 방송 분량은 30분쯤 된다. 첫 방송이 지난 7월 인터넷에 오른 후로 격주에 한 차례씩 지금까지 본 방송이 네 차례 이뤄졌다. 부산의 미디어 사회적기업 미디토리가 팟캐스트 제작을 도울 단체로 뽑혀 그들을 돕고 있다. 김영한 기자 kim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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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목소리' 실제 녹음 장면. 미디토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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