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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토리가 사랑한 얼굴들] 극단<옆집우주> 배은채 연극인을 만나다

미디토리 스토리/뉴스레터

by 미디토리 2023. 6. 30.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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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토리가 사랑한 얼굴들] 2023년부터 새롭게 선보이는 '미디토리가 사랑한 얼굴들'은 아녜스 바르다 영화의 한글제목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다큐멘터리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Faces Places, Visages, villages)에서 아녜스 바르다는 이렇게 말합니다. “마을, 풍경, 얼굴을 찾아간다면 난 언제든 떠날 준비가 돼있어.”  
그저 당신이 보고 싶어서, 혹은 그곳이 좋아서 가는 것 외에 다른 이유가 없는 작은 여행을 떠나보려고 합니다.  우리 사이엔 늘 ‘카메라’가 있어서 당신께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던 아쉬웠던 순간들. 이날만큼은 카메라 렌즈가 아닌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편안하게 서로의 안부를 나누려고 해요. 미디토리언들이 매월 돌아가며 오랫동안 기다려온 휴식 같은 만남의 순간들과 그 속에 오고 간 우정의 대화를 조금씩 기록해 나갑니다.  

에디터. 유진

 

우주를 무대로 경계  없는 ‘우리의 이야기’를 하는 배은채 연극인을 만나다 

은채님과 미디토리는 두 번의 작업을 했다. 

작업 때마다 많은 스탭이 참여했고, 촉박하게 진행되다 보니 이야기 나눌 기회가 적었다. 

카메라 없이 편하게 마주 보며 이야기 나눌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옆집우주, 은채님의 공간으로 향했다. 

 

[은채님과 함께했던 작업]

문화다양성 웹드라마 [멋대로 멋지다 멋지대로다](2021),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가 느끼는 상황을 비틀어 보고 다름이 저마다 멋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웹드라마

은채님은 옆집우주 라는 극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옆집 우주의 연습실은 부산도시철도 2호선 민락역 내, 민락인디트레이닝센터에 있다. 

넓고 낯선 공간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니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그런 나를 위해 은채님이 아이디어를 던져주셨다. 

 

배은채 뭔가 그런 거 해야 하지 않을까요? 왓츠인마이백 ? 내 가방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 소개하다 보면 엄청 쓸데없는 질문이나 에피소드들이 나올 거고 그러면서 또 우리가 정말 공유하고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나올 수 있고 그렇게 하면 조금 더 편하지 않을까요?

 

은채님의 제안에 갑작스럽게 시작된 가방 속 아이템 파헤치기! 

촬영 현장에서는 알 수 없었던 은채님의 알록달록한 개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띈 노트 두 권.

 

 

배은채 연극이 공공 영역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미국의 ‘클리블랜드 퍼블릭 시어터’라는 곳이 있어요. 

최근에 그 그룹이 리드한 워크숍에 참여했는데, 이 노트가 그때 얻은 굿즈에요. 세계여성공연예술축제 추진위원회에서 진행한 공공연극 제작 워크숍이었어요. 처음에는 내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 경험 자체가 정말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져요. 

 

저희는 주로 ‘공공미디어’라는 단어를 자주 쓰곤 하는데, ‘공공연극’이라는 개념이 친숙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네요. 어떤 워크숍인지 궁금해요. 

 

배은채 참여자 중에는 극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연기 경험이 없는 사람도 있었어요. 이 워크숍은 대본에 따라 연극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이렇게 사람들을 모아놓고 서로 누군지 인사도 안 해요. 일단 몸을 움직이면서 가까워지는 거예요. 무대를 계속 돌아다니지만 부딪히지 않게 피하면서 서로를 바라보고 느끼게 되는 거예요. 그러다가 인생에서 있었던 일 중에 내 주변 사람도 되고, 내가 들은 이야기도 되고 근데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 중에 용기 있다고 생각하는 어떤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거든요. 이 이야기가 필요한 누군가가 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을 향해서 이야기를 시작해요.

제가 들은 얘기는 위안부 심달연 할머니 이야기였는데, 그 할머니께서는 일제강점기 다 끝나고 전쟁 끝나고도 가족을 못 만나고 힘든 상황에서 내가 위안부였다는 거를 얘기하면 피해를 보고 사람들에게 나쁜 눈초리부터 받았다고 해요. 그 시대를 겪으면서 아무 얘기도 못 하고 살아오셨는데요. 지금은 자기를 위해서 압화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시고,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듣는 내내 눈물이 나는 거예요. 워크숍을 리드했던 클리블랜드 퍼블릭 시어터가 그런 이야기를 계속했었어요.  

“관객 중에는 분명히 우리의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야. 그걸 간과하지마"  

실제 이 그룹이 클리블랜드라는 도시에서 마약 하는 청소년이라든지 노숙자, 퀴어와 같이 소외되는 사람들과 함께 연극 만드는 작업을 해왔거든요. 그들이 이야기하는 공공 연극이라는 것에 대해서 요즘 더 생각해 보게 되는 거 같아요. 



극단 ‘옆집우주’ 

“옆집에 이사 왔습니다. 당신이 꿈꾸던 우주.”

옆집 우주는 2021년 창단된 부산의 청년 극단입니다.

서사에서 지워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가시화하고, 보다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을 창작합니다.

꿈꾸던 세상이 아니면 어때요, 직접 만들면 되죠. 



극단 ‘옆집우주’ 소개말을 보고 이 그룹은 어떤 이야기를 하는 곳일까 궁금했어요. 

 

 

배은채 저희가 팀을 만들어 보자고 모였는데 이름을 못 정하고 있었어요. 이름이 한 30개 정도 후보가 있었거든요? 결국 서로 투표해서 결정하게 됐어요. ‘늘 당신의 옆집에 당신이 상상하는 우주가 있을 것이다.’ 이런 느낌도 있고 ‘우리가 당신의 옆집에 찾아가겠다.’는 느낌도 있는데, 상상하던 것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당신의 옆으로 찾아오겠다는 거죠. 

단원들 각자 지향하는 바가 조금씩 다른데 결국에는 우리 이야기를 하자는 걸로 모여지는 거 같아요. 미디어나 공연 예술 안에서 대상화되는 여성 캐릭터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나오는 걸 만들자! 내 친구들이 봤을 때 안 힘든 것, 내가 봤을 때 내 이야기라고 생각되는 것, 재밌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저 극단은 페미니즘 얘기만 하는 거 아니야? 로 비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단원 모두를 대표할 수 없겠지만, 저는 그런 마음이 있고요. 갑자기 빵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그냥 지금 여기에서, 나로부터  출발하는 이야기를 하자는 거죠?

배은채 그렇죠. 근데 기왕이면 내가 향유하고 만들어 가는 게 대중적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잖아요. 

공공연극 워크숍에서 느꼈던 건데, 내 이야기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 셰익스피어나 50억짜리 뮤지컬을 봤을 때보다 나(혹은 관객)의 이야기가 무대 위에 있을 때 제일 큰 감동을 한다고 이야기했던 게 제일 와 닿았거든요. 그게 제가 '왜 연극을 자꾸 못 놓치'라고 생각했던 이유인 것 같아요. 내가 연극을 하는 이유이고, 옆집우주라는 팀을 꾸린 이유인 것 같아요. 

 

옆집우주가 작품을 만드는 과정도 궁금해요. 그 안에서 은채님의 역할도 궁금하고요. 

 

배은채 저는 배우고요.  팀에 작가랑 연출이 있거든요. 둘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편이긴 하지만 유형이 때마다 달라요. 어떤 스토리를 가져와서 할 때도 있고요. 이번 9월 초에 <갈림길에 선 여자>라는 연극을 하는데, 그게 세계 여성 공연 예술 축제에서 선보일 예정이에요.  작년에 뽑혀서 올해 장편으로 만들었어요.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연극이에요. 공연하기 직전에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담은 거예요. 극 구상할 때 여러 이야기가 나오는데, “갈림길에 선 여자가 뭐냐고 정말 홍상수 영화 이름 같다”, “성공하려면 서울에 가야지" 뭐 이런 식의 우리 고민이 추가되는 거예요. 

 

벽에 붙은 메모들은 그런 작품 구상이나 트레이닝을 위한 작업인가요? 

 

배은채 저희가 5분 글쓰기라는 걸 하는데, 저도 이 팀에서 작가랑 연출을 한번 했었거든요. 글 쓰는 일이 힘든데, 이걸 하면서 덕분에 그런 경계가 허물어졌어요. 시간을 5분으로 정해놓고 주제를 정하면 시작하는 순간부터 펜을 놓지 않고 계속 써야 해요. 그렇게 쓴 글을 서로 돌려가면서 읽고 그 밑에 코멘트를 달고… 이렇게 모이면 몸풀기처럼 해보고 있어요.

 
저 원래 연극 되게 좋아했었거든요. 오히려 중고등학교 때 연극을 많이 더 많이 봤어요. 근데 어느 순간 딱 안 가게 된 계기가.. 대학교 때 연극 보러 갔는데 배우의 과도한 여성 제스처를 보고 갑자기 딱 받치는 거예요. 그러면서 연극하고 멀어져 버렸죠. 그런데 부산에서 이런 다양한 인물에 대해서 다루려고 하는 연극과 극단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느낌이랄까요? 

 

배은채 저도 예전에 연극을 보러 갔을 때, 시작과 동시에 관객들의 텐션도 올려야 되고 하는데 노래가 딱 나오고 조명이 딱 비치면서 그 어떤 천 뒤에서 여자 배우가 섹시 댄스를 추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아 이 공연은 나를 위한 공연이 아니다 ‘는 걸 느끼고 싫은 경험을 딱 했어요. 그러니까 저는 관객 중에 누구도 안 그랬으면 좋겠는 거예요. 한편으로는 그러다 보니까 스스로 검열의 검열이 너무 심해지는 거죠.

예를 들면 내가 이렇게 좀 더 얼굴이 밝아지도록 하는 것도 이상하고 화장을  안 하고 이대로 올라가면 조명에 눈썹은 날아가고 입술도 칙칙해지고 이러는데 그러지 않기 위해서 입술을 빨갛게 하고 눈썹도 진하게 칠하는 거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근데 이걸 내가 어디까지 검열해야 하며 그런 무모한 생각들이 막 뒤집히는 거예요. 그런 생각도 <갈림길에 선 여자>라는 연극에 담긴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사실 아무런 해도 안 끼치려면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맞잖아요. 저는 사실 우리 극단이 거기까지 갔다 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제는 말랑해졌다고도 느껴요. 예전에는 그런 검열에서 좀 더 엄격하게 하려고 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냥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 해도 되지 않냐는 생각이 들어서….

빠르고 강렬하게는 아니었고 엄청 느린 소용돌이가 지나갔고, 사실 아직도 거기 있는지 모르겠지만 고민이 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저희도 안에서 그런 고민을 많이 해요. 같이 작업했던 웹드라마 같은 경우에도 사회에서 소수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우리가 그런 정체성을 가져본 적이 없는데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제대로 한 게 맞을까? 계속해서 질문했었거든요. 연극이나 문화예술 활동가들이 던지는 질문이 엄청 소중한 것 같아요. 

 

배은채 아, 그때 현장에서 미디토리에 대한 인상이 남아있는 게 있는데, 저는 이런 팀을 본 적이 없어요. 현장에서 입는 미디토리 조끼? 있잖아요. 그걸 입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기능적인 여성들이 모여서 일을 하고 있고, 책임자들이 모두 여성이고 하는 그런 촬영 현장이 저는 처음이었거든요.  저도 그 뭐라 해야 하나 미디토리라는 팀이 있다는 존재가 약간 힘을 주는 그런 게 있잖아요. 저런 사람들이 뭔가 계속 한다. 살아있다. 이런 느낌을 받으면서 힘을 얻는 것 같아요. 

 

은채님은 연극을 언제부터 시작했어요?

배은채 좀 어릴 때부터 하고는 싶었는데 딱히 계기는 진짜 없고요. 중학생 때부터 그냥 연극배우 재밌겠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사실 뇌 연구도 하고 싶어서 생명과학과로 진학했어요. 연극을 하다가 갑자기 뇌 연구를 해야지! 이렇게 하기에는 너무 힘들 것 같아서 뇌 연구를 하다가 연극배우를 해봐야지! 라고 생각 했었거든요. 그러다 휴학하고 연극을 시작했는데, 돈이 아예 없어진 거죠. 그래서 한 번 포기했었고. 복학하고 약대 준비를 시작했어요. 생명과학과 학생들은 약대 준비를 많이 하거든요. 그런데 이 힘든 시간을 거치고 약사가 된 내 모습을 상상하는데 너무 싫은 거예요. 뇌 연구 쪽으로는 계속해 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학교에 돌아가서 둘 다 해보자는 생각으로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고 거기서부터 연극을 시작하게 됐어요. 결국은 연극을 선택했죠. 

 

연기자들도 어떤 자신의 생애주기나 아니면 어떤 작품을 계기로 배우에 대한 정의를 다르게 내리잖아요. 은채님은 어떠세요? 

 

배은채 아직 정의를 못 내리고 있어요. 최근에 공공 연극을 접한 게 제일 큰 계기가 되기도 한 거 같고요. 저는 아무리 의미 있는 작품이라도 배우는 연기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어요. 프로페셔널한 것과 이걸 소비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가 그 둘 중에 뭘 더 우선시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겠어요. 둘 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무슨 작품을 하는지가 상관이 없나 아니면 무슨 작품을 하든지 좋은 의미만 가지면 연기는 진짜 못해도 상관없나? 의미도 가지고 연기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면 꼭 그 두 개를 다 가지고 있어야만 예술가이고 배우인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그냥 기술적으로 봤을 때 되게 잘 구현된 영상하고 의미상으로 봤을 때 잘 만들어진 영상하고 뭘 맞춰서 가야 하나 생각해요. 균형을 잃으면 매너리즘에 빠지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그 둘 사이를 교차하면서 계속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나름대로 내부 워크숍도 하고 되게 애쓰고 있는데 좀 더 탐구해 볼 수 있는 프로젝트나 기회를 만나지 못하면 점점 기계적으로 가게 되는 것 같아요. 오늘 은채님이랑 이야기하면서 옆집우주랑 재미난 실험을 해볼 수 있으면 좋을 거 같다고 느꼈어요. 

 

배은채 엄청 좋아요!  그냥 만나서 보드게임이라도 하고 (하하) 그런 아무것도 아닌 걸 하면서 …..

 

클리블랜드 퍼블릭 시어터하고 했던 워크숍을 약간 변형해서 우리를 상대로 그런 실험을 해주면 안 돼요? 

 

배은채 아, 그래서 그 팀에 정말 물어볼까 생각했어요. 다른 사람들과 그 작업을 해봐도 되는지. 그 워크숍에서 이런 말을 계속했어요. 물에 돌 떨어뜨리면 이렇게 퍼져나가는 것처럼 자기는 한 명이랑 만나는 것조차도 엄청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그 사람이 분명 그 파동을 일으킬 거라고 그런 믿음을 가지고 만나는 거라고.

 

촬영 현장에서는 각자가 주어진 역할에 맞춰서 행동하느라 그 이상의 모습을 보지 못했는데, 은채님의 공간과 사물들, 다양한 생각들을 들여다보면서 자기만의 창작과 예술을 하는 자유로운 영혼을 만날 수 있었다. 

 

예술이 비록 정신적 행로일지라도 동료와 함께 걸으면 더욱 좋은 법이다.
-책 <아티스트웨이> 중

 

내 안의 것을 끄집어내서 표현하는 창조적 행위를 할 때 고독을 추구해야 하기도 하지만,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동료 예술인과 이렇게 지지와 응원을 나누면서 안정감을 찾아갈 때 더 좋은 결과가 남는 것 같다. 오늘의 만남이 서로의 우물에 작은 파장을 만들어 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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