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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량강화] 2021-06 문화다양성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작동원리

미디토리 스토리/미디토리 뉴스

by 미디토리 2021. 8. 29.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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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토리가 '문화다양성'을 공부하는 이유 

미디토리는 거의 매년 '문화다양성'을 주제로 영상을 제작하고 있는데요. 그렇게 다양한 문화다양성 사업을 기록하다 보면 '문화다양성'에 대해선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어쩌면 그런 이유로 계속 공부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1. 매년 저희가 현장 기록을 해보니 문화다양성은 그 개념 자체가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 혹은 진화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역동적 개념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낡은 것은 부서지고 새로운 것이 창조되기도 하는 과정의 반복이죠. 우리 구성원들도 분명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며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해오셨을 겁니다. 늘 이러한 변화에 민감해야 우리의 콘텐츠도 새로운 것에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2. 그렇다면 낡은 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새로운 것은 뭘까요?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요? 여러분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당신은 소수자라고 생각하나요? 소수자는 또 누가 정하는 겁니까? 한 번쯤 이런 의문이 들거나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바쁜 일상을 사는 우리들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토론이나 학습할 기회가 별로 없지요.  
  3. 콘텐츠를 기획할 때 표면적인 문화다양성의 범주나 그저 '평등', '차이'이라는 단어를 차용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화다양성 감수성을 지닌  ‘시선'으로 사람, 사물, 상황, 풍경을 바라보고 그 이면의 이미지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문화다양성이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 대한 철학적 배경을 이해하고 자기 사유를 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이번 시간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문화다양성 워크숍은 이렇게 진행했어요

 

1. 문화다양성을 주제로 구성원 전원이 책이나 영화를 하나씩 추천하고 생각을 나눠보았습니다. 

  • 문화다양성을 주제로 한 책이나 영화를 선정하기 어려우신 분은 문화다양성 아카이브에서 추천하는큐레이션 리스트를 활용했어요. 
  • 셀럽들이 추천하는 문화다양성 콘텐츠 https://www.diversityweek2021.com/curation/curation 

2. 김동규 (나락한알 원장) 선생님과 함께 '문화다양성'을 이야기하다 

나락한알 김동규 원장님을 모시고 '문화다양성'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작동과정과 원리를 떠올려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문화다양성은.. 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로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서문을 열어주셨어요. 

 


#철학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문화다양성 #강의노트 #요약

문화다양성은 <폭력>의 문제와 연결되어있다. 

무의식적으로 피해자들에 가까이 가려고 하는 태도가 있다. 그것은 자신이 피해자가 아니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지금도 말을 하고 있는 저의 언어는 가해자의 자리에 있을 지도 모른다.

문화다양성 감수성이 '관용'의 개념과 헷갈릴 수도 있다. 관용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은 ‘주인'의 위치에 있다.  관용을 베푸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쓴다. 주인의 화법이다.  요즘은 이 말을 잘 안쓰려고 한다. 예들 들면 '용서해줄게..'와 같은 말이 그렇다. 

“모르는 게 죄입니까?"

"모르는 게 죄입니다.” 

모르려고 주저앉는 게 문제다. 무지하려고 하는 게 폭력일 때가 있다. 성폭력을 한 사람이 몰랐다고 하는 태도들을 자주 본다. 무지가 죄다. 

모르고 쓰는 말들이 많다. 모르려고 하는 게 죄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류하는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문화다양성 이야기는 힘의 이야기와도 연결되어있다. 

  • 문화다양성이라는 단어를 왜 쓰기 시작했을까? 
  • 말의 기원: 생물 종다양성에서 시작되었다. 
  • 생물은 종으로 묶인다. 개인에게도 문화가 있다. '개체성'이라는 개념 
  • 획일성의 문화는 좋지않다고 생각한다. 문화획일성. 
  • 나는 완전 시스로 자랐던 것 같다.  내 안의 다양성을 많이 누르며 자라왔을 것이다. 많이 들었던 이야기 "남자 새끼가… "로 시작하는 문장들... 나도 참 남자가 되려고 힘들게 살았구나 싶었다. 나의 다채로운 면을 노출시켰을 때 수치스럽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받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인권과 연결된다

  • 젠더 데이터의 부재를 꼬집는 책 <보이지 않는 여자들>을 추천한다.  
  • 성역할이 고정화된 사회일수록 여자들이 불편하게 다니는 상황에 처할 때가 많다. 특히 아이돌봄을 수행해야 할 경우, 도보를 많이 이용하게 되는데 힘들 때가 많다. 유아차를 끌거나, 아이 손을 잡고 거닐어야 할 때...  
  • 걷더라도 남자들은 자기 한몸 편하게 걷는다. 여성들이 훨씬 많이, 불편하게 걸어 다닌다. 
  • 눈이 오면 어떤가? 인도보다 도로부터 치운다.  보도부터 치워야 한다.  교통사고 데이터도 보면 보도에서 많이 다친다. 
  • 남자들이 정책결정을 많이 하기 때문에 차별할 의도는 아니지만 남성 중심으로 정책을 짜게 되기 때문이다. 
  • 결국 무지한 게 다른 세대와의 싸움이 된다.  모를 수 있다는 것을 출발하는 게 편할 수도 있겠지만,  모르는 게 죄다고 블록을 쌓아버리면 대화를 시작하기 어렵다.
  • 인권→ 인간 중심의 권리.. ⇒ 한계가 있다. 생명권, 동물권이 지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 육식문제 또한 우리가 사는 사회의 폭력을 어떻게 제거해나갈 것인가?  의 문제로 연결된다.   

똘레랑스 vs 인정 vs 환대  

 

주체와 객체의 관계에 따라 우리는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살펴보자.

  • 똘레랑스(관용): 주체 > 객체 ⇒ 주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도덕. 주인행세.  
  • 인정: 주체=주체 ⇒ 상호 인정. 대등한 존재. (패착이 있다. 젠더 데이터가 부제 할 때... 성립이 안된다. 부재한 존재들이 있기 때문이다.  자연적으로 권리를 가진 사람들만 해당. 난민이나 성소수자처럼 권리가 부재한 사람에게는 인정의 주체로 설 수가 없다. 문화다양성 내 폭력을 겪는 사람들은 여기에 해당된다. ⇒ 상호 문화, 유럽에서 쓰는 말. 이미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은 자신이 객체의 위치에 갈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 환대: 주체 < 객체  ⇒ 객체의 존재를 받아내면서 주변의 폭력을 줄여나가는 것.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지만 잘 안된다. 환대를 하기 위해서는 내 자리를 박차면서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는 힘이 필요하다. 길을 지나가는데 누가 죽어가고 있다. 내가 조금더 힘을 써서 도와주는 것.  이것이 환대다. 

어느새 화이트보드가 가득찼다. 

 

* responsibility : 타인의 호소에 응답할 수 있음. 

* 내 안의 문화다양성이 있으면 나를 나답게 만들기위해 인공적으로 폭력을 가할 필요가 없다. 

 

부산은 남성들을 위한 도시, 남자 노동자들을 위한 도시

위안부 문제를 철학적으로 바라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위안부'라는 단어는 우리나라가 쓴 말이다. 미군을 상대하는 여자들에게 처음 붙인 단어. )

가부장주의가 타자의 성을 어떻게 착취하는가? 

- 6.25 전쟁 때 국군 위안부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릴 때 다녔던 골목을 떠올려보면 붉지 않았던 곳이 없었다. 

완월동, 영도, 부산진역… 역마다 다 있더라. 사상, 구포, 감전동, 하야리아 부대 인근… 하마정, 거제리 일대… 

기차 다니는 1호선 따라 전부 집창촌이 있었다.  

부산은 남성들을 위한 도시. 남자 노동자들을 위한 도시임을 반증한다.  

부산은 모든 지수가 위기다. 문화다양성 지수도 위기다. 50대 꼰대남의 도시. 그들이 아닌 존재들은 살기 불편한 도시. 

 

내가 가진 번듯한 자리를 박차고 판을 다시 짜는 것은 환대이다. 

객체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다수일 수 있다.

우리가 알지못하는 약자들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약자들이 직접 이야기하지 않으면 권력자는 차별을 안 하고 있는 줄 안다. 

그 입장이 아니면 모르는 경우가 많다. 착각으로 인해 가해자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순간 객체는 다시 살 수 있다. 내가 가진 번듯한 자리를 박차고 판을 다시 짜는 것은 환대이다. 주인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는 불편한 실천이다. 

 

가해자의 언어, 피해자의 언어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 증언을 소설로 만든 책이다. 영상을 만드는 미디토리에게도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이런 구절이 있다.  

“내가 나를 사랑해야 용서도 할 수 있어. 나를 사랑하는 것. 그게 시작이야.” 

가해자가 쓰는 사과의 언어는 이미 오만한 자리에 있다는 것. 

피해자는 ‘용서' 의 언어를 쓰고 있다. 폭력의 당사자는 자신을 계속 지우고 있었던 거다. 스스로 망각하고… 

길은옥 할머니 83살에 증언, 70년의 세월을 숨기며 사셨던 것이다. 내가 용서의 주체가 될 수 없었던 70년의 시간. 스스로를 주체로 되돌려놓아야 한다. 생존자가 되어야 한다. 위안부 대부분이 스스로를 부정하고 부인하는 언어에 가깝다. 자신을 사랑하기가 쉽지 않더라. 

 

문화다양성은 고상한 개념이 아니라 시급한 문제다.   

환대가 일어나는 곳에는 객체였던 존재들의 호소가 있다. 

목숨(생존)과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문화다양성은 고상한 개념이 아니라 시급한 문제다. 

난민화된 삶. 실제 난민뿐만 아니라 우리가 난민의 자리에 처할 위기가 있다. 밀려나는 사람들.. 난민이다. 

법적 예외상태를 대표하는 존재가 난민이다. 난민에게는 법을 적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헌법은 국민에게만 주어진다. 난민에게는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호모사케로 -죽여도 되는 존재. 법적 권리주체가 부여되지 않은 존재.  보호할 법이 없다. 

 

성소수자도 마찬가지. 

 

얼마전 아들을 잃었던 컨테이너 노동자도 마찬가지. 계약서 없이 8년 동안 일한 아버지는 아들을 잃고 난 뒤 계약서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부재한 노동자. 난민화 된 삶이라는 것은 예외 상태로 전락하는 모든 존재들이다. 그 존재들을 알게 되었고, 함께 살자고 하는 것이 문화다양성이다. 문화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문화다양성이 존재하는 사회는 폭력을 제거하는 힘을 가진다

다양한 존재들이 생기면, 새로움이 등장한다. (약자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면 여러모로 좋은 편의들이 생긴다. 파급효과가 생긴다…. ) 

창조력은 환대하는 힘이 있다. 

새로운 관점이 등장할 수 있도록 여지를 만들어둔다. 

세속의 , 일상의 구원자(메시아) ⇒ 객체를 환대하는 것. 우리안의 모든 약함들이 해결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종의 목숨들… 자신의 내부에서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번잡스러움을 잘 환영해내는가? 

늙는다는 것은, 안 변하겠다고 고집 피우는 것이다. 

난민을 못받아들이는 것도 마찬가지. 

 

문화다양성이 주는 현실적인 장점은 누구라도 살기 좋아진다.  

 


#소감나누기

유진 > 제작자가 중간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창작과정에서 많이 생각하게 될 거 같다. 

 

수원 > 주체-객체 이야기 나올 때 생각이 많아졌다.. 제 스스로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부재 안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상황에서는 주체가 되기도 하고 객체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상황에 따라서 어디에 속해있는지 인식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김동규 > 누구의 시선으로 카메라를 놓는가도 영화문법과도 연결되는 것 같다.  

 

지민> 그동안 문화다양성 개념자체를 주체의 입장에서 이해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객체와 약자의 생존과 연결되어있다는 것이 무겁게 다가왔다. 매개자 역할을 잘 수행하면서 환대의 개념으로 잘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은> 너무 좋았다.  문화다양성의 범주에 해당하는 목록이 있다고 생각했다. 다문화, 퀴어, 장애.. 이런 식으로.. 그런데 이것이 강사님과 함께한 한 시간 동안 다 깨진 것 같다. 제가 추천했던 <윤희에게> 감상평도 지금 생각하니 부끄럽다. 강의를 들으면서 아까 내가 뭐라고 했는지 생각하게 되더라. 아마도 완전 주체의 입장에서 이야기했던 것 같다. 머리 띵 맞은 것 같다. 

 

지선> 저는 공감가는 이야기가 많았다. 지금 제작 중인 다큐와도 연결지점이 생겨서 힌트를 얻게 되어 좋았다. 부산이라는 도시가 그곳에 살고 있는 여성들의 몸을 어떻게 뚫고 나갔는지 파악해나가고 있다. 여성들이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객체 of 객체, 부산여성들은 자신이 객체이면서 또 다른 객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인 것 같다.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객체이기 때문에 객체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가? 생각이 많이 든다.  

 

김영> 신나게 들었다.  요즘 제가 주체적인 입장에 서는게 느껴진다. 나이가 많은 것과 엄마라는 것, 미디토리 대표를 하게 되면서 가지는 힘, 여러 가지.. 어느 순간 가부장 같은 힘. 사회질서 속에서 힘을 가진 사람들의 속성을 지니게 되는 순간을 의식하게 될 때도 있고 그것을 내려놓는 순간 힘이 빠지기도 한다. 긴장해야겠다. 긴장하지 않으면 계약하는 프리랜서 예술가들, 20대 여성들.. 혹은 우리 아이들에게 무뎌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쓰지 않는 철학적 용어지만… 저런 식의 사고를 해서 이야기를 해야겠다. 카메라를 든 사람들에게 이 생각을 나눠야 겠다. 

 


#미디토리언들이 추천하는 문화다양성 콘텐츠 

김영의 pick! <어린이라는 세계> 

“우주가 무수히 많은 곳에서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아름다운 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그러면서도 우주는 활기차고 사무적이다.”- [완벽한 날들] 메리 올리버

문화다양성을 얘기하면 다양한 처지에 있는 소수자들을 생각하는데… 난 어린이는 생각도 못했다. 그래서 이 책이 다양성을 알 수 있는 책이라고 했을 때 이해를 못했다.  태어날 때부터 다양한 존재들이 자라고 교육받고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면서 몰개성적인 인간이 된다. 

내가 어디를 가던 권력이 있는 계급이라고 생각할 수 없지만, 난 집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커다란 세계였고, 힘을 가진 존재였다. 밖에 나와서 다른 이들에게는 존중하고 배려하지만, 난 우리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혼내고, 폭력에 가까운 힘을 행사할 때가 있다. 사랑한다는 이유와 잘되라는 교육이라는 이유 아래. ‘평균’의 삶, 보통사람, 가장 안전한 길, 주류, 튀지 않고 무던하게… 라는 삶의 방식을 강요하며, 아이들의 특별함이 삐죽 튀어나오면 ‘불안’이라는 마음에 갇혀 가위를 들고 그 싹을 잘라내기 바빴다. 무엇보다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청소년으로 넘어가는 시기, 세상을 알아가고 말이 통한다는 생각에 ‘삶을 먼저 살아봐서 아는데..’라는 말을 시작으로 아이의 생각을 자르고 있었고, 이는 또 다른 폭력이었다. 

“사람들이 각자 자기 방식으로 살아가는 우주는 활기차다. 서로 달라서 생기는 들쭉날쭉한 이야말로 사무적으로 보일만큼 안정적인 질서다. 그런 우주 속에서 살아간다는 게 나는 안심이 된다. 우주가 우리 모두를 품을 수 있을 만큼 넓다는 사실도,”

“모든 인간이 소중하다거나 그런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인간은 소중한지 아닌지 따질 수 없는 존재라고 배웠다. 누구도 자신의 의지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세계의 구성원으로서 똑같은 자격을 갖는다고 배웠다. 기사에 달린 댓글에는 어린이가 ‘피어 보지도 못했다’는 표현이 있었다. 글을 쓴분의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나는 틀린 비유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삶은 그런 게 아니다. 삶의 순간순간을 새싹이 나고 봉오리가 맺히고 꽃이 피고 시드는 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지나고 보면 그런 단계를 가졌을지 몰라도, 살아 있는 한 모든 순간은 똑같은 가치를 가진다. 내 말은 다섯 살 어린이도 나와 같은 한 명의 인간이라는 것이다. 

“사회가, 국가가 부당한 말을 할 때 우리는 반대말을 찾으면 안 된다. 옳은 말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사회에 할 수 있는 말, 해야 하는 말은 여성을 도구로 보지 말라는 것이고, 아이를 낳고 키우기 좋은 세상을 만들라는 것이다. 우리 각자의 성별이나 자녀가 있고없고가 기준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어린이를 위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어린이 스스로 그렇게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약자에게 안전한 세상은 결국 모두에게 안전한 세상이다. 우리 중 누가 언제 약자가 될지 모른다. 우리는 힘을 합쳐야 한다. 나는 그것이 결국 개인을 지키는 일이라고 믿는다.”

 

→ 다양성과 소수자에 대해 얘기할 때 우리는 너도 어쩌면 소수자가 될 수 있어라고 말한다. 어린이는 숫적으로 소수자는 아니지만, 약자에 속한다. 우리는 약자의 단계를 거쳐, 그 마음과 상황을 겪어봤다. 

 

김은민  pick! <깊이에의 강요> , <문학의 건망증> 

깊이에의 강요는 젊은 여류 화가를 소재로 예술가의 문제를 묘사하고 있다. 이야기의 축은 예술에 깊이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방황하고 번뇌하다 죽음을 선택한 예술가의 이야기이다. 그녀가 죽고 난후 깊이가 없다고 말한 평론가는 관점을 180도 뒤집어서 그녀의 그림에는 삶을 깊이 파헤치고자 하는 열정이 있다고 말한다.  상황에 따라 일관성없게 자신의 견해를 쉽게 뒤집는 말 한마디가 자신감을 상실하고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이야기. 

<문학의 건망증>문학과 우리 삶은 어떤 함수 관계에 있으며 삶은 문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걸까? 무엇을 읽든지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고 우리의 삶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일까? 문학이 삶을 변화시키지 않을지라도 무의식에 남아 삶에 몀몀히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누구도 간단히 답변할 수 없는 이 문제는 문학이 갖는 의의의 문제와 맞물려 있다.   

 

읽기는 쉬운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 

첫번째 이야기는 작가, 화가의 이야기. 어느 평론가가 니 작품에는 깊이가 없다는 지적을 듣고.  그림을 끊고, 텔레비전 광고탑에서 떨어져 자살한다. 그리고 다시 이 평론가는 그 화가의 작품을 높게 평가한다. 누군가의 권위있는 말 한마디로 그 사람의 깊이를 함부로 판단하는 건 아닌가. 

 

박지선  pick! 다큐멘터리  <크립캠프: 장애는 없다>

미국 장애인권운동의 역사를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크립캠프: 장애는 없다> , 미국 장애인권운동의 주역들은 10대 시절 크립캠프에서 처음 만나게 된다.  

크립캠프라는 것 자체가 충격적이다. 장애인권운동가들이 10대 때 처음 만난 캠프, 장애인들과 히피들이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캠프, 놀이, 요리 등 모든 생활을 10대 장애인들이 스스로 해 낼 수 있도록 환경만 조성하는 독립적인 생활 보장, 장애인들이 다른 장애인들을 보면서 스스로 자신의 처지에 대한 각성의 과정을 잘 보여주면서,

자신의 소수성을 깨닫는 과정을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비장애인이 거쳐가는 공교육에서는 이런 교육과정이 없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과정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의 고민 제시

 

서수원의  pick! 애니메이션 <코코> 

 문화다양성 수준이 너무 낮아서 코코를 처음 봤을 때는 애니메이션 내 문화가 허구로 기획된 건 줄 알았다. 다시 보니.. 그게 다른 나라의 문화와 역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화나 애니메이션 볼 때 우리나라의 제사문화에 사로잡혀있어서 허구로 여겼던 것 같다. 허구가 디즈니 장편 애니메이션 중에 처음으로 백인이 아닌 주인공이었다고 하더라.  다른 매체를 접할 때 신경 못썼던 건데… 문화다양성 감각으로  보니 다르더라. <소울>도 비슷한 주제라고 하더라. 

 

이세은의 pick! 한국영화 <윤희에게>

퀴어영화라고 생각하고 보기 시작했지만, 결국 첫사랑 이야기.

영화를 보기 전에는 중년 여성의 동성애라고 하면 괜히 어색하게 느껴질까 걱정했는데 막상 보니 애잔하고 먹먹한 첫사랑 이야기 었고 재밌었다. 다양성을 보는 시선도 결국 이렇게 보면 되는 것 같다. 그냥 사람, 그냥 사랑. 

거부감이 들지 않을까 싶었는데… 재미 측면에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첫사랑 얘기더라.  특별하게 느껴지기보다는 애잔하고 감동적이고 안타깝고 그렇더라. 재미있었다. 다른 소수자를 바라볼 때도 똑같은 인생이겠구나. 문화다양성도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면 되지 않을까.

 

정유진의 pick! <거미여인의 키스> 

너무나도 다른 두 사람이 한정적인 공간(감옥)에서 지내면서 서로를 어디까지 이해하게 될까? 하는 궁금증

정서의 변화가 이끌어낸 사랑과 이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은 사회 어디든 열려있어야 한다.

고전영화이다.   모르는 역사적 배경이 많았지만, 인물이 서로 다른 존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정치범과 동성애자가 각자의 이유로 감옥에 들어온다는 상황 설정이 관심이 갔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서로를 어떻게 이해하게 될까? 나중에 서로 깊이 이해하게 되는데…

소설도 있고 영화적인 서사와 연출도 뛰어남. 우리에게 그런 기회가 열려있는가?  정서적 이해를 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이나 상황이나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황지민의 pick! <문라이트>, <나의 문어 선생님>

문화다양성 사업 진행될 때 영상으로 담아내면서 들었던 생각이.. 문화다양성에 해당되는 범주가 어디까지일까? 

소수자는 어디까지일까? 동물이나 생태계는? 그런 부분도 궁금했고, 그런 다양한 존재들의 차이를 존중하자고 피상적으로 이야기하는데

존중한다는 방법이 뭔지가 참 궁금했다. 진짜 존중하는 과정이 어때야 할까? 

<문라이트>는  흑인 게이 남성의 이야기. 작품성도 뛰어나고 대중의 공감도 이끌어냈다. 당사자성의 이야기가 녹아져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그 시나리오 작가도 흑인 작가, 감독도 흑인. 당사자가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고 타인, 혹은 백인이 이 이야기를 풀어냈을 때 공감을 받을 수 있을까? 당사자성.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문화 다양성을 이야기할 때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고민이다. 

<나의 문어 선생님> 다큐 감독이 문어라는 생명체를 일 년 동안 친구처럼 교감하는 이야기. 

왜 문어라는 존재랑 교감을 하려고 했는지 그런 마음가짐부터 신기했다. 큰 범주에서는 같은 생명체이지만 다른 종이 교감한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다. 존중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보면서 이해하려는 시도와 과정이 중요하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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