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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에서 날아온 편지, 함께 종이배를 띄웠던 그 순간

미디토리 스토리

by 미디토리 2014. 1. 21.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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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반가운 소포를 받았습니다. 지난해 여름 미디토리 사무실을 찾았던 경희대학교 학생들이 직접 만든 교지를 보내준 것입니다. 한진중공업 3년의 기록, <종이배를 접는 시간>을 두고 나눴던 이야기들이 바지런히 정리된 기사를 읽으며 잊고 있던 감정들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치열하게 작업했던 순간들을 발견하며 지금 나 하나만을 생각하고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멀리 서울에서 찾아와주었던 경희대 교지 고황 식구들 고맙습니다, 덕분에 많은 정리가 되었어요. 아래 장한슬 수습위원이 적은 인터뷰 기사 전문을 싣습니다.  






[경희대학교 교지 고황 86]

함께 종이배를 띄워요!

-한진중공업지회 3년의 투쟁을 기록한 허소희 씨를 만나다.

장한슬 수습위원 ddoeoger@hanmail.net

 

3년 전, 회사는 400명의 노동자를 자르겠다고 했다. 선박 주문이 들어오지 않아 2010년도 손실액이 517억이나 발생했다는 이유였다. 해고 대상자는 무작위로 정해졌다. 하지만 회사의 주장은 하루 만에 거짓으로 드러났다. 운영이 어렵다던 회사는 다음날 주주들에게 176억 원을 현금 배당했고, 대주주인 조남호(한진중공업 회장)29억을 받았다.

-<종이배를 접는 시간> 중에서

 

내가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2011, 부산 영도의 한진중공업 조선소는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공간이었다. 크레인 위에서 한 여성노동자가 목숨을 건 고공농성을 하고 있었고 크레인 밑에서도 연일 시위가 계속됐다. 경찰과 용역깡패들로 인한 폭력이 난무하기도 했다. 그때, 희망버스라는 이름을 달고 많은 사람들이 영도로 내려왔다. 인권운동가, 시인, 가수들도 희망버스에 참가했고 부산영화제 기간에는 한 여배우가 한진중공업 노동자의 작업복을 입고 레드카펫에 오르기도 했다. 그 해 말 고공농성을 하던 여성 노동자는 크레인에서 내려왔다. 나는 모든 게 잘 해결되는 줄만 알았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게 믿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올해 5, 한진중공업지회 노동자들의 3년을 기록한 책이 <종이배를 접는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하지만 책은 미완의 르포가 되었다. 그 이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 78, 한 여름의 부산에서 <종이배를 접는 시간>의 공저자인 허소희 씨를 만났다. 그녀는 미디토리라는 회사에서 기획을 맡고 있다. ‘미디토리는 부산에서 작업을 하던 미디어 활동가들이 최저 생계비는 벌면서 미디어 활동을 이어나가기 우해 2010년에 꾸린 사회적 기업이다.

 

 

주류 언론에서 소외된 곳을 찾아가 그곳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게 저희의 활동 목표 중 하나였어요. 모여서 회사를 꾸린 2010,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발표가 났고 바로 카메라를 들고 나가게 되었어요. 저희에겐 당연한 일이었죠.”

 

 

부산의 활동가들은 201012월 말부터 시작해서 2011년까지 영도의 한진중공업 투쟁 현장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올라간 85호 크레인이 보이는 아파트 근처에 카메라를 설치해 24시간 관찰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진중공업지회 노동자들의 부탁으로 1년을 매달려 <종이배를 접는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20135월 책을 내게 되었다.


<종이배를 접는 시간>은 노동자 개인들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85호 크레인에 김진숙 지도위원이 올라가고, 희망버스가 왔다 가고, 동료인 최강서가 자살을 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겪어냈던 조합원들이 느낀 것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한진중공업지회 복직투쟁에서 도드라진 분 말고도 보통의 조합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어요. ‘희망버스라는 거대한 힘을 맞이하고 떠나보내는 그 시간들을 보통의 조합원들이 어떻게 보내고 느꼈는지 담아보려고 노력했죠. ‘내가 소중한 이 사람들의 인생 전체를 하나하나 갈무리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부담도 느꼈지만 결과적으로는 너무 행복한 작업이었어요.”

 

 

희망버스는 막막했던 한진중공업지회의 상황을 반전시키는 계기였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천수보살의 손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고마움으로 조합원들이 만들었던 것이 종이배라고 한다. 평생 조선소에서 쇳조각을 가지고 배를 만들던 노동자들이 무딘 손으로 종이배를 접었던 것이다.

 

 

조합원들은 거칠고 무딘 손으로 종이배를 접기 시작했다. 희망버스를 타고 오는 사람들에게 줄 작은 선물이었다. 시멘트 바닥을 깔고 앉은 엉덩이가 배기고 자꾸 땀이 찼지만 손바닥만한 종이를 접어 배 모양을 만들고 테이프로 고정시켰다.

-<종이배를 접는 시간>중에서

 

 

투쟁을 지켜보고 기록하는 과정에서 힘 빠지는 일도 많았다. 특히 언론들의 왜곡된 보도 행태 때문에 절망감을 느꼈다.

 

 

지역 언론에 실망을 많이 했어요. 그래도 조금은 다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고 최강서 조합원의 관을 들고 분향소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경찰은 관을 불법 시위 도구라고 했고 관을 빼앗길 수 없어서 조선소 옆 개구멍을 따라 들어갔던 일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경찰과 대치하여 조선소 안에 갇히게 되었죠. 그런데 부산일보에서는 그것을 시신시위라고 지칭하더군요. 심지어 기사 제목이 시신시위 위로 불붙나라는 문구를 사용했어요. 유족이나 동료였던 노동자들은 전혀 배려하지 않은 비인간적인 문구라고 생각해요. 그런 식의 보도가 한 두 번이 아니었어요.”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고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강서 조합원이 돌아가시고 취재를 하러 갔는데 노동자 가족들이 스키복을 입고 나오신 거예요. 저는 그냥 청바지 입고 갔거든요. 그분들은 너무 자주 거리에 나오셔야 하고 그래서 얼마나 추운지 잘 아니까 그렇게 입고 오신 거였어요. 저한테 담요를 건네주시는데 순간 내가 얼마나 많이 모르고, 그러면서 어떻게 이분들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너무 슬펐죠.”

 

 

그래도 기록하는 작업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그만두지 않았다. 허 씨는 많은 세월이 지나도 우리가 옳았다는 증거로 말할 수 있도록 기록을 계속해야 한다고도 했다.

 

 

공지영 작가의 르포 <의자놀이>를 보면서 저희도 이런 글을 쓸 수 있었거든요. 물론 저희에게도 유명작가와 같은 자격이 있을까라는 고민은 있었지만 저희의 글을 보고 또 누군가가 이런 일을 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기록을 멈출 수 없었어요.”

 

 

20111110일 김진숙 지도위원은 309일 간의 85호 크레인 위에서의 농성을 끝내고 땅으로 내려왔다. 아마 이 책이 소설이었다면 김 지도위원이 내려오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해피엔딩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은 미완의 르포로 남았다. 회사는 노사합의를 끝내 지키지 않았고 노동자들은 복직된 지 3시간 만에 다시 무기한 휴직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한 젊은 노동자는 결국 자살을 하고 만다.

 

 

나는 회사를 증오한다. 자본, 아니 가진 자들의 횡포에 졌다. 내가 못 가진 것이 한이 된다. 돈이 전부인 세상에 없어서 더 힘들다.”

-고 최강서 열사의 유서 중에서

 

책 작업을 완료할 시기는 원래 작년 12월이었어요. 하지만 그 때 최강서 조합원이 자살을 했고 책을 완성할 수 없었죠. 어디까지 담아내야 하나라는 고민이 컸어요. 하지만 노동운동에서 끝은 없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도 우리가 매듭지어야 할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희망버스라는 성과가 있었지만 노사합의는 결국 지켜지지 않았고 백퍼센트의 복직도 결국 얻어내지 못했어요. 하지만 묵묵히 걸어가시는 노동자들을 보며 이제 겨우 하나의 매듭을 지었을 뿐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그만큼의 과정만이라도 담아냈고 미완의 르포가 되었습니다. 그 다음 매듭도 얼른 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현재 한진중공업지회의 분위기는 별로 좋지 않다고 한다. 일단 복직을 기다리는 노동자들도 있고 노조에서 함께 싸움을 하다가도 회사 편으로 넘어간 노동자들도 있다. 어느 편이든 서로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리고 어린 동생의 죽음을 막지 못했고 그 죽음을 많이 알려내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많이 느끼신다고 했다. 허 씨는 노동자들과 함께 여러 도시를 돌며 <종이배를 접는 시간> 북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지난 일을 이야기하는 자리이지만 함께 평가하는 자리여서 북콘서트가 의미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한진 노동자분들은 그 이야기를 다시 하는 것이 괴롭고 책장을 넘기시는 것조차 힘들어하세요. 하지만 많은 분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시죠.”

 

 

인터뷰의 마지막에서 그녀는 “20년 뒤에 희망버스가 교과서에 실리고 우리 아이에게 내가 그 때 희망버스 탔었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고 덧붙였다.

 

 

한 여름에 인터뷰를 했고 이제는 계절이 바뀌어 또 겨울이 되었다. 어쩌면 여전히 나아진 것은 없고 수많은, 또 다른 한진중공업지회들이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하지만 절망하기보다는 함께 절망을 만들어낼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노동자들이 무딘 손으로 접었던 종이배를 함께 띄울 수 있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경희대학교 교지 <고황> 74-74p


고황 식구들과. 역시 나이는 속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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