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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00되기’의 경험을 제공하는 공공미디어

Social Impact/사회혁신 네트워크

by 미디토리 2022. 6. 30.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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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문화재단 정책연구센터 - 문화정책위원회 결과보고서 -사회적가치분과] 

 

미디어접근소외계층 콘텐츠 제작지원 사례 

- 당사자 콘텐츠 <송TV>,<명도가간다>,<자립비책>사례 중심으로-

 

 미디토리는 사회적기업 인증을 유지하면서, 노동자협동조합의 조직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당사자가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며, 협동의 힘으로, 지역의 자원을 이용하고, 지역과 나눈다.’ 는 협동조합의 원칙과 방향이 활자에 머물지 않기 위해, 미디토리가 잘할 수 있는 방식, 미디어로 사회적가치를 확산하는 활동이 일상의 실천으로 이어지기 위한 방법을 현장에서 모색하고 있다.     

 누구나 간단히 자신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왔다지만, 새로운 미디어환경이 도래할수록 정보의 왜곡과 혐오이미지는 만연해지고, 정보접근의 격차는 커지고 있다. 미디토리는 주류미디어와 온라인 플랫폼에서 소외된 이웃의 삶을 조명하고 문화다양성이 존중받는 지역사회를 만들어가자는 방향성을 가지고 왜곡되거나 낮아진 목소리(당사자)를 우리 지역 내에서, 가까운 이웃에서 찾고자했다. 이들과 시민사회의 접점을 만들기 위해, 찾아가는 방식의 당사자 콘텐츠 제작지원을 진행하고 있다. 

 

 커뮤니티/공동체 미디어 제작지원 사례

 미디토리의 ‘제작지원’ 방식은 소외계층의 목소리를 단순히 대변하는 차원으로 전문가가 제작의 전체과정에 개입하는 것을 지양한다. 당사자가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를 함께 공유하고, 사회에 발신할 공익적 메시지를 디자인하는 과정을 거쳐, 그것이 확산되기에 적합한 방식을 함께 선택한다. 기술적 한계가 그들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방해요소가 되지 않도록 우리의 기술지원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협업’의 과정 속에서 당사자는 자신의 목소리가 콘텐츠로 ‘되어져가는’ 경험을 감각할 수 있도록 제작지원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레거시 미디어(TV, 라디오 등)의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제작지원을 주로 했다면,  2010년을 지나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라디오 팟캐스트스, 영상팟캐스트,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플랫폼을 기반으로 다양한 뉴미디어 콘텐츠가 등장, 당사자들 또한 SNS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콘텐츠를 공유하고 당사자 조직의 메시지를 확산하고 있다.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제작지원 과정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송국클럽하우스의 <송TV>

 

정신장애인 사회복귀시설 ‘송국클럽하우스’는 정신장애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의미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클럽하우스 공동체이다. 미디토리와는 미디어교육을 통해 강사와 수강생의 관계로 시작되었다. 미디어교육을 해보면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교육 수료 후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경우는 드물다. 송국클럽하우스 회원들은 시작할 때부터 당사자들이 꾸준하게 콘텐츠를 제작하고 싶다는 의지를 가지고 출발했기 때문에 몇 년 뒤에는 유튜브 채널 <송TV>를 런칭하고 지금까지도 잘 운영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무엇보다 송국 회원들은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참여자들은 기획에 앞서 사회가 당사자들을 어떤 시선으로 묘사하고 그로 인해 어떤 편견을 가지게 되는지 살펴보았다. 

 

1) 모니터링: 기존 시사보도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정신장애인의 모습은?

- 모니터링과 주변인들의 생각을 들어본 결과, 정신 장애인 관련 콘텐츠는 거의 다 사건사고, 정신장애인에 대한 왜곡된 정보와 혐오감을 주는 뉴스 콘텐츠가 대부분이었다. 

 

[시사보도 프로그램] 

-충동적으로 저지른 사건은 모두 정신장애인이 저지르는 것처럼 보도한다.

-입원이나 시설에 보내는 걸 필수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비장애인들의 인권만 중요하게 보도하는 것 같다. 

-정신장애인은 사회에 놔두면 안되는 존재, 집이나 병원에서 나오면 안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오락 프로그램] 

-정신질환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모습

-병은 심한 것도 있고, 약한 것도 있는게 당연하다. 정신병도 마찬가지다. 

-조현병환자를 범죄자로 낙인 찍지 말고, 공황장애처럼 남들 앞에서 이야기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2) 기획방향: 나라면 이렇게 만들겠어요! 

- 오해를 만들 수 잇는 자극적인 내용 담지 않기

- 약을 먹으면 양성 증상은 해결된다는 걸 알리고 싶다.

- 범죄비율은 비장애인이 더 높다. 

-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어도 사회생활을 잘 할 수 있으며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보도도 필요하다. 

- 자립할 수 있는 모델을 발굴하고 자주 보여줘야 한다. 

 

3) 참여자들이 정리한 기획의도

 사람들이 우리 정신장애인들의 증상이나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했으면 좋겠다. 

 

4) 제작예시 : 정신장애인 인식 개선 영상 (실험카메라) 

첫 번째로 당사자가 기획한 콘텐츠는 부산시민을 대상으로 한 정신장애인 실험카메라 영상이다. 지금까지 주류미디어가 정신장애인에게 덧씌운 혐오와 왜곡된 이미지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캠페인 영상이 꼭 필요하다고 느꼈다. 정신장애인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정신장애인의 주요 증상을 보여주면 어떻게 반응할까? 라는 질문은 ‘실험카메라’라는 장치를 선택하게 했다. 

송국클럽하우스 채널 <송TV>, <정신장애인이 길을 물어본다면?>편의 한 장면

5) 시사점

- 실험카메라라는 다소 적극적인 형식을 취한데는 부산시민들의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많을거라는 또 다른 편견이 작용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참여자들은 자신이 가진 장애를 밝히며 부산시민에게 길을 재차 묻는 과정에서 부산시민 대부분은 스스럼없이 자연스럽게 답변해주는 경험을 하게 된다. 당사자들 역시 자신이 부산시민들에게 가졌던 편견이 있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참여자들은 이렇게 작은 성공(?)의 경험들을 모아 지금의 <송TV>라는 유튜브 채널을 당사자 스스로 운영하고 있으며, 정신장애인 당사자에게 필요한 건강정보, 일경험과 관련한 정보 뿐만 아니라 일상 브이로그 등을 통해 주류미디어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하지만 평범한 하루를 보여주고 있다. 직장동료로 함께 하게 된 분이 정신장애를 가졌다면 주변에서 어떤 도움을 주면 되는지, 사회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가기 위한 팁도 제공하고 있다. 

 

2. 부산탐구생활 <명도가 간다>, <자립비책>

 

부산탐구생활은 부산시민이 참여해서 만드는 시청자참여방송이다. 노동자, 여성, 장애인, 여성장애인, 지역예술인 등 커뮤니티, 마을, 시민사회 소식까지 다양한 계층의 삶을 가까이서 조명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명도가간다>. <자립비책>은 시리즈별로 런칭한 문화다양성 콘텐츠다. 

 1) <명도가 간다>

 <명도가 간다>는 휠체어 장애인의 시선으로 부산의 공간과 장소에 이동하고 머무는 여정을 담고 있다. 이를 위해 명도씨의 카메라에 작은 캠코더를 장착하였다. 카메라는 전동 휠체어를 탄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아주 작은 덜컹거림도 담아냈다. 휠체어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카메라의 거친 화면을 통해 도로의 아주 작은 턱에서 위험을 감지하게 된다. 경험을 감각하는 것, 00되기의 경험은 짦은 찰나일지라도 상대방에게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강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이들이 되기의 경험을 할 기회를 가져야 소수자를 위한 자리를 기꺼이 내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러한 행동이 아주 많이 자주 모여야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겠다는 것을 <명도가 간다>라는 콘텐츠를 제작하면서 여실히 느끼게 되었다. 이 시리즈를 찍고 난 후 미디토리 구성원들은 보도블록의 턱에 굉장히 민감해졌으며 베리어프리 관광명소라는 허울뿐인 팻말을 볼때마다 분노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다. 

 

(2) <자립비책> 시즌1,2,3

 <명도가간다>시즌을 종료한 후, 미디토리 구성원들은 문득 휠체어를 탄 남성장애인이나 남성노인은 비교적 자주 마주치는데 반해 여성장애인을 마주치는 확률이 지극히 적다는 사실에 질문을 품게 된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여성장애인, 가부장적 문화와 비장애 남성 중심의 사회시스템 속에서 장애인, 특히 여성장애인은 남성장애인에 비해 교육을 제공받을 경우가 최근의 통계에서도 그 격차라 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는 여성장애인이 일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이는 자립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데도 큰 걸림돌이 되고 있었다. 

자립비책 시즌1은 여성장애인들의 이야기로 출발했다. ‘부산여성장애인연대’와 함께 기획하고 다양한 신체장애와 연령대, 일경험을 가진 여성장애인분들을 섭외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토크형식으로 풀어냈다. ‘비장애인/남성’ 중심 사회를 향해 자립을 선언한 여자들의 시원한 수다의 장이 필요했다. 아이를 키우는 시각장애인 엄마들의 이야기, 자립한 언니가 들려주는 독립성공스토리, 장애를 가진 몸이 나이들어간 과정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과 지금의 제도가 가진 한계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여성장애인 뿐만아니라 한국에 사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이야기였다. 스텝들은 제작초반에 다양한 신체장애를 가진 분들이 혹시나 촬영현장에서 불편해하진 않으실까 우물쭈물 어쩔줄을 몰라했지만, 회를 거듭하며 자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필요를 요청하고 응대했다. 또한 활동가라 자처한 우리 스스로도 얼마나 획일화된 여성의 이미지에 갇혀 있었는지 깨닫는 시간이었다. 여성은 훨씬 더 다양한 몸을 가질 수 있으며 상품화된 몸보다 더 가시화 되어야함을 느꼈다. 

자립비책 시즌2. 한부모가족의 담담하고 당당한 토크

 

 

자립비책 시즌2는 한부모가족센터와 함께 제작했으며, 센터 회원인 한부모 여성가장들이 각자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어 출연하고 기획과 대본작성에도 참여했다. 돌봄과 생계를 홀로 유지해야하는 상황에서 제작진은 한부모 여성가장의 여러 어려움 중에서도 ‘시간의 빈곤’에 가장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한부모 가정에서 홀로 지내는 아동에 관한 기사들이 많아지면서 어렵게 생계를 책임지는 한부모 여성가장에 대한 안좋은 시선과 편견, 양육비를 책임지지 않는 배드파더스에 대한 처벌강화 등 혼자가 아닌 함께 싸워나가며 자립의 기반을 다져가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자립비책 시즌3는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과 함께 부산지역의 성착취 현장을 중심으로 여성인권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콘텐츠를 기획중이다. 

  

 ‘00되기’의 경험을 제공하는 공공미디어

미디토리 활동가들은 지난 10년간 위와 같은 사례들을 만나면서 ‘우리의 이야기는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당사자들이 사회에 발신하는 메시지는 다채롭고 힘이 세다는 것을 자연스레 체화해왔다. 미디토리의 단면을 잘라본다면 아마도 우리가 만난 당사자들의 언어가 단단하게 어우러져 자리잡고 있지 않을까 싶다. 당사자와 함께 사회적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확산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그들의 언어가 공공의 메시지(콘텐츠)로 ‘되어져가는’ 경험은 과정에 참여하는 모두에게 화학적 변화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를 앞으로 더 나아가고 싶게 만든다. 한편 자본의 경계에 서있는 미디어 제작환경은 우리 앞에 한계 아닌 한계로 작용한다. 

 

문화운동과 미디어운동, 그 사이를 쉼없이 오가며 소수자의 메시지를 기록하고 실어나르는 문화매개자, 미디어 활동가들  

 문화다양성콘텐츠로 수상의 기쁨도 누렸지만, 빠듯한 제작비 앞에선 늘 다음 행보를 망설이게 된다. 지역문화재단 문화다양성 사업파트에 자립비책 콘텐츠 기획안을 제안드려 보았지만 전체 예산 규모가 크지 않은 영역에서 미디어콘텐츠 제작비 예산을 책정하는 것이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장애인문화예술 사업파트에 문의해보니 교육강사와 장애예술인이라는 자격으로 나뉘어져있기 때문에 장애인의 미디어활동을 ‘제작지원’하는 지위로 참여하는 경우는 없었다. 

뉴미디어콘텐츠나 숏폼 공모사업에서는 공공성보다는 콘텐츠의 시장성과 영향력을 중요한 기대효과 전략으로 서술해야했다. 대상화되길 원치않는 소수자의 목소리와 외모는 대중들의 관심을 받기 힘들다. 시장성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기획안을 쓰는 입장에선 모순적이다. 로컬콘텐츠를 지원하는 사업은 해가 갈수록 투자규모를 늘리고 있지만, 상품과 프로그램 위주의 로컬비즈니스나 수익창출 모델 형태의 창업지원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비영리 관련 공모사업은 전국단위며, 소수자와 약자를 위한 지역단위의 공익적인 콘텐츠 지원은 찾기 힘들다. 서울의 경우 마을공동체 지원조례가 있어 구마다 마을미디어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남녀노소 마을 주민들의 활동과 의제가 마을라디오나 방송국의 콘텐츠로 모여 공동체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부산지역 공공미디어 콘텐츠는 아직 미디어활동가들의 버팀에 기대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 와중에도 마을미디어, 공동체라디오 등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공공미디어들이 지역과 이웃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미디어가 전통적인 예술장르를 매개하는 정도의 역할에 머무르기보다는 사회적가치를 확산시켜 문화다양성이 지역민의 일상에 자리하게 하는 문화매개자로 기능할 수 있는 제도와 정책이 마련되었으면 한다. 특히 문화운동과 미디어운동 사이를 오가며 사회적가치를 실어나르는 청년 미디어활동가들이 지역을 떠나지않고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법제도 마련을 위한 기초적인 논의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완월아카이브-공간기록현장

 

글. 박지선(미디토리협동조합 이사)

20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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